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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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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세계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은 에베레스트가 아니다. 파키스탄 내륙으로 쭉 뻗은 카라코람 산맥의 K2다. 해발 8611m로 세계 2위. 인도양에서 멀리 떨어진 카라코람 산맥은 매우 건조한 불모지대다. 여기에다 날카로운 피라미드 형태의 K2는 경사부터 남다르다. 에베레스트와 달리 연봉(連峰)들보다 1000~2000m 높이 치솟아 악천후도 잦다. 산 중턱의 거대한 6개 빙하가 찬 공기를 뿜어대고, 짙은 구름이 감싼 정상에는 회오리 돌풍이 몰아친다. 지금까지 K2를 정복한 산악인은 100여 명 남짓. 그런데도 희생자만 50명을 웃돈다. 등반 사망률 30%로 단연 최고다. 엄홍길은 “이 산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오르지 못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동료를 잃은 박영석은 “작은 실수도 결코 용납하지 않는 산”이라 했다. 산과 인간의 사투를 그린 영화 『버티컬 리미트』도 K2가 배경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알리스 하그리브스. 1995년 K2에서 서른 셋의 생을 마감한 여성 산악인이다. 알프스 거벽들을 두루 오르고, 여성으로선 처음 무산소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에도 성공했다. 그녀는 다른 등반대가 철수할 때도 혼자 남았다. 그러곤 검은색의 K2를 오르기 시작했다. K2 정상에서 내려올 때 북쪽에서 시커먼 구름이 다가왔다. 시속 160km가 넘는 폭풍이 반나절간 몰아친 뒤 그녀는 사라졌다. 하그리브스에겐 일곱 살의 아들과 네 살짜리 딸이 있었다. “엄마의 산이 보고 싶어.” 아빠는 한 달 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엄마 곁을 찾아갔다. 그들이 베이스캠프에 닿은 날 K2는 모처럼 기적같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말 아름다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어. 이제 알 것 같아….” <『엄마의 마지막 산 K2』, 제임스 발라드>

그제 K2에서 한국 산악인 3명이 숨졌다. 거대한 빙벽이 무너져 고정 로프와 자일까지 한꺼번에 휩쓸려 내려갔다. K2에서 내려오다 한국인 3명이 숨진 86년의 악몽이 재현됐다. 하지만 젊은 산꾼들은 오늘도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른다. 박범신의 소설 『촐라체』에서 얼핏 그 이유를 더듬어 볼 수 있을까. 주인공 형제는 크레바스와 험준한 산세를 뚫고 결국 에베레스트 옆의 촐라체 정상에 오른다.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뿌연 세상뿐이다. 그래도 히말라야에 푹 빠진 박범신은 반문한다. “젊은 사람들이 꿈과 명운을 전부 던져볼 만한 이상이 없는 세상, 그런 삶은 쓸쓸하다. 누구나 마음속에 촐라체 하나쯤 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