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모두 행복한 진짜 우생순 만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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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나 사인 안 해.”

남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대본대로라면 영화화에 동의할 수 없다”며 제작사 측에 영화 스토리의 수정을 요구했다. 2007년 400만 관중을 불러모은 핸드볼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의 촬영을 앞두고서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실화가 바탕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 우리 가족 얘기라고 생각할 텐데 이건 좀 너무하다”는 게 남편의 거부 이유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영화 속 한미숙(문소리분)은 “나 애 낳고 3주 만에 경기장 나갔어. 이기든 지든 먹고살려고 미친 듯이 뛰었어. 나한테는 그게 핸드볼이야”라고 말한다. 돈이 핸드볼을 하는 큰 원동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난 아니다. 나는 핸드볼로 돈을 벌 만큼 벌었지만, 먹고살려고 핸드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핸드볼이 좋기 때문이다.

오성옥(右)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서 덴마크에 아쉽게 패해 은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서 임오경 선수와 나란히 서 있다. 한국은 결승전에서 유럽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억울하게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중앙포토]

영화가 개봉됐을 때 남편과 나는 좌절했다. 핸드볼이 대중의 관심을 모으게 될 거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동의서에 사인을 했지만 스토리는 별로 수정된 게 없었다. “극중 한미숙 역에 오성옥을 대입시키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지만 결국 내 인터뷰까지 영화 끝부분에 삽입시켰다. ‘나=한미숙’이 돼버린 셈이다.

철 모르는 어린 조카들은 영화를 본 뒤 “이모, 이모는 안 가난한데 왜 영화에서는 가난해?” 하고 물었다. 나는 아직도 ‘우생순’을 보지 않았지만 ‘정말 그렇게 힘들었느냐’는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스토리를 다 알고 있다. 남편과 같이 ‘한 번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보지 않기로 했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들 승구가 같이 보자고 하는데 차마 보여줄 수가 없었다. 다들 실화라고 생각하니 나와 정말 가까운 사람들 빼고는 내가 극중 한미숙과 같은 길을 걸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친정과 시댁 식구들은 다들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네 핸드볼 인생이 망가질까 봐 차마 어떡하진 못하지만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들 했다. 언제나 ‘핸드볼 선수 오성옥’을 자랑스러워하던 가족들이 심란해하니 나는 내가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이제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영화 덕분에 핸드볼 인기가 높아졌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국민들 가슴 속에 감동을 심어줬다면 그걸로 만족하련다. 지난봄 일본과의 올림픽 재예선 경기에 이기고 돌아왔을 땐 취재진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끼리 “뭐야, 우리가 축구대표팀도 아닌데” 하며 기뻐하기도 했다. 지금도 올림픽에 나가는 우리들이 이만큼 관심을 받는 건 영화 덕이 크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하다. 유럽에서는 꽉 찬 관중 속에서 핸드볼을 하지만 한국에서야 어디 그런가. 지금의 관심도 올림픽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척박한 한국의 핸드볼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다시 한번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 오늘(5일) 베이징으로 떠난다. 이번만큼은 온 국민과 나와 우리 가족이 모두 행복한 진짜 우생순을 만들고 싶다.

정리=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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