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위문편지와 졸업식 표창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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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내가 근무하는 곳은 충남공주시 유구파출소다.우리 파출소에는 1년여전부터,추운 겨울날 순찰도는 모습이 고마워 편지를 한다는한 초등학생의 편지가 한 달에 두어번 꼭 찾아왔다.
고마운 마음을 전해 주고 싶던 차에 그 어린이가 2월16일 졸업한다고 해 파출소장 표창을 하기로 하고 학교에 연락했다.그런데 어떤 착오인지 회답이 오지 않았고 우리도 잠시 잊고 지나쳤다.졸업식 당일이 되어서야 뒤늦게 아차하며 그 사실을 깨우쳤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내빈들과 학생들로 식이 시작되기 전 그 학교 강당은 무척이나붐볐다.나는 교감선생님을 찾아가 사정하고 예정에 없던 유구파출소장의 표창순서를 만들었다.
시상순서가 됐다.여러번의 예행연습으로 숙달된 듯 이름이 불러지면 수상자는 통로쪽에 앉아 있다가 하나 같이 고운 한복을 입고 예쁜 모습으로 나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회자가 『다음은 유구파출소장님의 표창이 있겠습니다』라고 안내했고 소장께서는 단아한 정복에 기품있는 모습으로 단상에 오르셨다.『수상자는 김진』하는 사회자의 안내가 이어졌다.순간 장내가 술렁였으나 단상으로 나오는 어린이는 아무도 없었다.사회자가 재차 『6학년4반 김진』했으나 반응이 없었고 아이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때 소장께서 마이크를 잡으시고는 『위문편지로 경찰관 아저씨들에게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 준 학생이 있습니다.김진 어린이』하고 호명했다.
학생들이 앉은 자리의 안쪽에서 작은 어린이 한 명이 일어섰다.한복이 아닌 회색잠바 차림으로 아이들을 헤치면서 걸어 나오고있었다.졸업생들도 그제서야 『야』하고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기시작했다.단상에 선 그 어린이는 무엇이 부끄러 운지 고개를 들지 못하다 소장님과 악수한 후에 뛰듯이 자리를 찾아갔다.
졸업식이 끝나고 이틀후 낯익은 편지 한 통이 또 도착했다.『너무너무 감사해요.아마 영원히 못 잊을 거예요.저를 부르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이훈규 충남공주시유구읍 유구파출소 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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