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2.5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정당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들이 많이 따지는 게 있다. 바로 정당의 숫자다. 단순히 정당이 몇개 있느냐를 세보자는 뜻이 아니다. 정치판의 '주전 선수'가 몇이냐를 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권력이 어떻게 분배돼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서구에선 일당제.양당제.다당제로 정당체제를 나눠 왔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나라에선 이 분류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온 것 중의 하나가 '1.5당제'라는 부류다.

1955년 일본 보수세력이 자민당의 깃발 아래 집결했을 때 반대편에선 사회당이 통합 야당으로 맞섰다. 당시 사회당의 의석수는 자민당의 꼭 절반이었다. 이때부터 독주하는 거대 여당과 빈약한 야당을 가리켜 '1.5당' 또는 '1과 2분의 1 정당'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의 경우 독재정권 시절 이 표현이 자주 사용됐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민주정치였고 우리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똑같은 1.5당제로 보기는 어려웠다.

예컨대 5공 초 민한당은 발기 취지문에서 '유일한 야당임을 자부한다'고 했다. 정당으로서 집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처음부터 야당만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구색 맞추기 0.5당짜리 야당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정당이 못났다기보다 시절이 험악했던 탓이다.

정당이론의 권위자 지오반니 사르토리는 이를 감안해 좀더 세분화된 기준을 제시했다. 선거로는 정권교체 가능성이 거의 없는 '패권정당 체제'와 자유로운 경쟁이 허용되는 '우위정당 체제'로 나눈 것이다. 우리의 독재정권은 전자로, 일본의 자민당 독주체제는 후자로 분류된다. 외형상 같은 1.5당이라도 정치적 자유가 있고 없고에 따라 구분을 달리한 것이다.

17대 총선에서 10석 이하를 얻은 정당은 4곳이나 된다. 스스로를 '원내 3당'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머릿수만 따지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군소정당들을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과 똑같은 비중의 정당으로 볼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다당제 국가가 됐다고 할 수 있을까. 선수명단에 끼었다고 모두 주전으로 뛰는 것은 아니다. 덩치 큰 여야가 주도하는 정국에서 군소정당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2.5당제'라는 표현은 어떨까. '0.5당'들의 행보를 지켜본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