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소송’ 후 협박 전화 폭주 … 광화문 상인들 가슴 조마조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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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9일 정오쯤 서울 삼청동의 한 식당에 전화벨이 울렸다. 행주로 식탁을 훔치던 여 주인 A씨가 전화를 받았다.

“야, 거기 뭐하는 데야? 너 대책회의에 소송 냈지? 이 XX.”

성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그는 호통치듯 주인을 몰아세웠다. A씨가 “무슨 일이시죠”라고 묻자 욕설은 더 심해졌다. 남성은 “장사 참 자~알 되겠네”라고 소리쳤다. 주인은 “모르는 일”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광우병대책회의를 상대로 촛불시위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광화문 일대 상인들에게 ‘전화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25일부터 대책회의 홈페이지에는 소송을 낸 상인들의 실명이 공개됐다. 협박 전화는 이날 점심 시간을 기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A씨는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무서워 못 받겠다. 점심시간이라 예약전화도 있을 텐데 어떡하느냐”고 호소했다. 광화문·종로·삼청동 일대 상인들은 촛불시위로 큰 피해를 보았다. A씨도 최근 석 달간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가게를 리모델링하느라 지난해 말 2000만원을 빌렸는데 빚도 못 갚을 상황이다. 직원도 둘이나 내보냈다. 그는 대책회의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서명에 참여했다.

“살이 떨려 죽을 것 같아요. 여직원 하나 겨우 데리고 있는데, 밤늦게 퇴근할 때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떡해요. 인터넷이란 게 사람 하나 죽이고 살리는 건 시간 문제인 거 같아요….”

소송과 관계없이 광화문과 삼청동 지역 식당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협박하는 사례도 빚어지고 있다. A씨의 가게 인근 식당에 한 남성이 전화를 걸어 “예약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광화문 인근에서 20년 동안 카페를 해 온 B씨도 협박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단골 끊겠다. 장사 잘해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세종로에서 대형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시위대에 악감정이 있어서 소송을 한 게 아니다. 송호창 변호사가 TV에 나와서 ‘장사 잘 돼 10시에 문 닫는다’고 해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출이 반으로 떨어져 가게 직원을 3분의 1이나 줄였다. 그 사람들은 다 실업자가 됐다”고 했다. 그는 “사장 이름이 김모, 이모로라도 나가면 (네티즌들이) 명단에 있는 모든 김씨, 이씨 사장들에게 전부 전화할 거다. 절대로 신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북창동에서 음식점을 하는 D씨는 “형사소송이라도 하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가게 망하게 하겠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더라고요. 아내는 화병이 났는지 드러누웠어요. 한 국가의 국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적군과 아군 같아요. 배상을 받자는 게 아니라 서민들 생각해서 시위 좀 그만 하자는 거였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진주·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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