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표 위력 과시한 선거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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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2년4월 제14대 총선때 안양에서 출마했던 이인제(李仁濟)현 경기도지사가 경험한 일이다.『선거 한달전까진 야당후보들 지지표를 다 합쳐도 안될만큼 제가 우세했습니다.부동표가 많았지만그래도 마음놓고 있었죠.한데 1주일 남기고 부동 표가 돌기 시작하더군요.그때 6백표 차이로 간신히 이기긴 했지만 선거가 하루만 늦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李지사는 그래서부동표의 무서움을 지금도 절감하고 있다고 한다.
94년8월의 경주보궐선거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전 여론기관은민자당 임진출(林鎭出.여)후보의 압승을 예견했다.선거 이틀전인7월31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林후보가 30.5%,야당인 이상두(李相斗)후보가 14.9%로 차이가 무려 15.6%포인트였다.한결같이 林후보의 당선이 「떼어논 당상」이라고들 말했다.
결과는 전혀 달랐다.林후보가 32.6%,李후보가 33.7%를득표해 李후보가 최종승자가 된것이다.
『당에서도 너무나 의외의 선거결과에 모두가 할말을 잊었습니다.』 당시 기획조정위원장으로 선거를 진두지휘한 신한국당 강삼재(姜三載)사무총장의 말이다.패배한 민자당은 물론 전 여론조사기관들이 발칵 뒤집혀 원인분석에 나섰다.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약 30%를 차지했던 무응답층,즉 부동층이 선거당일 몽땅 李후보쪽으로 몰려간 것이었다.
姜총장은 『이 선거는 귀중한 경험이 됐다』고 한다.『부동표를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다간 선거를 망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같은날 치러진 대구수성갑 보궐선거도 마찬가지였다.여론조사에서는 현경자(玄慶子)후보와 정창화(鄭昌和)후보가 26%,23.6%로 박빙이었다.
그러나 약 40%가까운 부동표는 선거당일 전부 玄후보를 택했다.결과는 58.8%대 26.5%의 압승과 참패로 나타났다.
부동표의 파워가 여실히 드러난 사례들이다.
후보들을 더욱 애타게 하는건 부동표의 「몰표성향」이다.선거직전 어느 한쪽으로 한꺼번에 쏠리는 경향을 말한다.이성보다는 감성과 감정에 좌우되기 때문에 뾰족한 대책을 세우기가 어렵다.게다가 부동표중에서 절반은 마음을 정했으면서도 속얘 기를 안하는「위장부동표」다.
지난 14대 선거에선 1천표 미만으로 승부가 갈린 곳이 28곳이나 된다.1천표는 바람 한번 불면 얼마든지 뒤집히는 숫자다.여야 각당이 서로 우세를 장담하면서도 『결국은 선거당일이 돼봐야 알수 있다』고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 다.
여론조사기관에선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부동표의 향배를 좌우하느냐』에 대해 고민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답은 없다.
미디어리서치 안부근(安富根)전무는 이번 총선의 부동표를 대략두가지로 나눠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가 영주(領主)가 있는 지역이다.부산.경남과 호남지역,충청지역이다.
거기에 대구.경북이 추가된다.당장 주도권을 행사하는 사람은 없어도 심정적으로 반(反)신한국 정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수도권지역의 부동표는 다시 두가지로 분류된다.수도권지역에 살지만 영주가 있는 지역출신인 사람들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유권자들이다.전자는 역시 지역감정에 따라간다.
그렇다면 아무 연고도 없는 순수한 부동표의 향배가 관심이다.
이 표들은 이번 선거에선 정당보다는「인물」을 따라갈 것으로 분석된다.하지만 만일 막판에 악재가 생긴다면 순식간에 돌변할수도있는 표들이다.
총선 D-22일인 20일 현재 수도권의 부동표는 약 40%에달한다는게 여론조사기관들의 집계다.아직까지는 이 부동표가 어디로 쏠릴지는 아무도 예단할수 없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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