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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로고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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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중을 한 덩어리로 뭉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이야기하라면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월드컵 때 '오! 필승 코리아'가 한국민의 단결력을 세계에 과시하는 데 절대적 역할을 했듯이 각종 모임에서 애창되는 노래들은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결속시켜 준다.

이는 노랫말이 가지고 있는 이지적.감정적 측면과 그 노랫말을 실어내는 멜로디의 정서적 측면이 합해지면서 만들어내는 공감대의 위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민주화 시절 운동권 가요의 파급력에서 보듯 각종 선거나 반 정부 시위, 노동파업 현장 등 정치.사회 집회에서는 로고송을 활용한 지지세 모으기 전략이 매우 중요하게 고려된다. 이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로고송이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구미(歐美)에서는 이미 역사가 길다. 음악과 정치가 상황적 변동을 통해 교묘하게 결합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로고송이 영향을 미친 가장 대표적인 예는 지난 15대 대통령 선거 때 DJ가 선택했던 'DOC와 춤을'이라는 대중가요다. 당시 DJ 진영은 20~30대 젊은층을 겨냥한 경쾌하고 빠른 리듬과 재미있는 가사 내용의 이 곡을 선택해 대선 3수의 노약한 지도자라는 네거티브 이미지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인기 절정에 올라 있으면서 파격적인 개성을 추구하던 그룹의 최신 유행곡을 적절하게 개사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DJ를 경륜이 있으면서도 젊은 세대와 호흡할 줄 아는 활기찬 지도자로 각인시켰다. 이는 마치 1996년 러시아 대선 당시 병약한 이미지의 보리스 옐친이 20대 미녀와 함께 강렬한 비트의 디스코 댄스를 선보이면서 옐친이야말로 정서적으로 가장 젊고 서구화돼 있으며 개혁적인 후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킨 것과 비슷하다. 당시 옐친이 노란 상의에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두 미녀 댄서와 드레스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격정적으로 춤을 추던 모습은 외신사진으로도 전 세계에 전송돼 유명해진 바 있다.

대부분의 로고송은 기존에 히트한 대중가요에 노랫말을 개사하는 식이다. 때문에 각 정당은 매번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노래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선거에서 대중가요를 로고송으로 사용하려면 우선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일정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며 작사.작곡가에게도 사용 동의를 얻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로고송은 시대를 반영하면서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다 따라 부르기 쉬워야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데 각 정당이나 후보자는 대부분 시간에 쫓기다 사전준비 없이 급하게 제작을 서두른다.

그러다 보니 저렴한 비용에다 빠른 기간 안에 완성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고 결과적으로 높은 질적 수준을 기대할 수 없는 로고송이 만들어진다. 노래방 가수들이 매일 같이 탄생하는 우리 국민의 음악 수준을 감안할 때 메들리 가요 수준의 음악으로는 유권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 어렵다. 각 정당과 후보자의 기호와 이름만 반복돼 나오는 저급한 로고송은 자칫하면 후보자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

아이젠하워와 스티븐슨이 대결했던 5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스티븐슨 후보는 그가 얼마나 괜찮은 인물인가를 치켜세우는 노래를 여자 가수를 내세워 부르게 했다. 하지만 아이젠하워는 그가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임을 강조하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맞서 대승을 거뒀다.

이처럼 유권자들은 로고송에서 후보자의 인간적 삶이 묻어나오는 수준 높은 작품을 원하고 있다.

미디어 선거.감성 선거의 시대에 로고송은 또 하나의 정치문화를 상징한다. 때문에 기존에 히트한 대중가요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다음 선거부터는 창작 로고송이 많이 나와 한국 가요와 정치문화에도 새롭고 풍성한 장르가 추가됐으면 한다.

이건우 작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