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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 표현의 자유를 욕설의 자유로 오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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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 03면

-인터넷을 꼭 규제해야 하나.
“그렇다. 한국의 네티즌들은 익명성 속에서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인터넷 문화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의 독한 ‘인터넷 규제론’

-어떻게 규제해야 한다는 건가.
“세 가지 차원의 규제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자정 노력이다. 이어 포털 업계의 자율 규제와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 마치 인터넷은 법치주의의 예외인 것처럼 여겨지는 게 문제다. 명예훼손이나 불법·허위 정보의 피해가 심각하다. 포털 업체에서 문제가 되는 내용을 즉시 삭제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규제에 나서야 한다. ‘즉시’의 기한을 법에 명시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사이버 모욕죄 얘기도 나오는데, 일반적인 명예훼손보다 더욱 엄격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

-규제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부정적 이미지는 생각해 봤나.
“물론 그런 점이 없지 않다. 저어감이랄까…(그는 ‘저어하다’라는 단어를 이렇게 썼다). 하지만 균형감각을 유지하면 된다. 포털 업체에서 어떤 기사를 삭제할 때 글을 쓴 당사자에게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제공해 주면 문제될 게 없다. 책임만 따른다면야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해 줘야 하지 않겠나.”

-미국이나 유럽은 규제와는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지 않나.
“외국과 우리는 기본적으로 인터넷 문화가 다르다. 미국의 인터넷 공간에서는 욕설이 난무하지 않는다. 우리 네티즌들은 표현의 자유를 욕설의 자유로 오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네티즌들의 자율 정화가 선행돼야 한다. 초·중·고 교과에 네티켓 교육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얼마 전 간담회 때 보니까 포털 업체들이 ‘방학이 되면 초딩이 몰려온다’며 바짝 긴장하고 있더라.”

-인터넷에서 규제는 탄압과 동의어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많은 사람은 인터넷이 정부와 친하지 않으니까 규제하려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데, 지금 인터넷의 현실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오히려 건강한 인터넷 문화 조성을 위한 범국민운동이 필요한 때다.”

-규제는 또 다른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둥, 이상득 의원과 배다른 형제라는 둥 인터넷에서 말들이 많아 결국 DNA 검사까지 하지 않았나.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어느샌가 진실이 돼 있지 않았나.”
그의 답변은 일관됐다. 이쯤 해서 잠시 주제를 바꿨다.

이회창·박근혜 그리고 이명박
-이회창 여성특보로 정치를 시작했는데, 얼마 전 ‘자유선진당은 시궁창’ 발언으로 시끄러웠다.
“총재님(그는 여전히 ‘총재님’이라고 불렀다)에 대해서는 지금도 개인적으로 애틋한 감정이 있다. 법조인으로서 제가 존경했던 분이고…. 하지만 공적인 업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총재님도 다 이해하실 거다.”

-최근 전화 통화한 적이 있나.
“통화만 하는 게 아니고 따로 뵌 적도 있다. 음…, 좀 말하기 민감하다.”

-박근혜 전 대표 측과도 말이 많은데.
“그건 오해다(그는 이후 10여 분간 사태의 전말을 자세히 해명했다). 박근혜 총리설이 나왔을 때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실제 권한을 줘야 한다는 얘길한 적이 있다. 그때 ‘박근혜 전 대표 측이나 박 전 대표도 권한을 준다면 딜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 게 논란이 됐다. 하지만 곧바로 ‘물론 박 대표님은 통 크게 받으실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했다. 그런데 참 인터넷 문화가…(그는 여기서 다시 인터넷 문화를 거론했다). 얼마 전 나에 대한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올린 네티즌을 고소까지 했다. 주위에서는 강하게 말렸지만 결국 벌금형까지 받았다.”

-이 대통령도 후보 시절 무척 신뢰했던 걸로 아는데, 청와대에서 입각 제의는 없었나.
“아유, 무슨. 난 처음부터 지역구 출마로 진로를 잡았고 대통령께서도 그런 생각은 없으셨던 걸로 안다.”

-인재풀이 바닥났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지금이라도 전면에 나서 도와줘야 하지 않나.
“우리가 출범시킨 정부니까 어떤 자리에서든 열심히 잘하는 게 중요하다. 꼭 어디에서만 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기회가 와서 (내가) 해야 한다면….”

-청와대 대변인 제의가 온다면.
“의원이 가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또 대변인은 그만 사양하고 싶다. 대변인은 회의와 보고로 점철된 인생이다. 이제는 차근차근 나를 다져 가고 싶다.”

-서울시장 얘기도 나온다.
“(잠깐 생각하다가) 지금 그런 얘기는 너무 빠른 것 같다. 다만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데 내 캐릭터로 볼 때 법을 집행하는 일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한다.”
숨겨진 야망이 보였다. 또다시 화제를 바꿨다.

가족은 나의 힘
-정치, 할 만한가.
“솔직히 어렵다. 하면 할수록.”

-주위에 추천하라면 하겠나.
“추천이라…. 정치를 하려면 자신의 삶은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 사명감과 애국심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다. 개인의 행복이 너무 많이 침해되는 측면이 있다. 아쉬움도 많고 힘도 든다. 그렇다고 도망갈 수는 없다. 대신 보람이 있다. 그렇다. 보람이다. 여당이 되면서 책임감도 커졌다.”

-여성 의원이라 더 힘들겠다.
“어찌 말로 다 하겠나.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토요일 오후뿐이다.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하다. 엄마로서 제 역할을 못하니까.”
나 의원은 딸 넷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63년생. 만 45세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 34회로 판사의 길에 들어섰다. 동갑내기 판사인 김재호 대전지법 서산지원장과 1남1녀를 뒀다. 첫딸을 낳았을 때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딸 얘기를 물었다.

-학교는 잘 다니나.
“지금 중3인데 일반 학교에서 보통 아이들과 잘 어울려 지내고 있다(일부러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유나가 늘 시험을 치고 와서는 ‘엄마, 나 이번에 1등 할 것 같아’ 그런다. 그런데 301명 중에 284등 한 게 제일 잘한 거다(웃음). 얼마나 밝고 씩씩한지…. 졸업하기 전에 반장 한번 해 보겠다며 매 학기 반장 선거에도 나갔다. 지난 1학기 때는 반장 된 아이랑 둘이 나갔는데 세 표 차이로 떨어졌다며 2학기에 또 나가겠단다.(또 웃음).”

-내년에 고교에 진학하는데.
“사실 서울 송파병에 공천신청을 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거기가 이른바 장애인 8학군이다. 학교뿐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운동시설과 편의시설이 전국 최고다. ‘왜 송파만 고집하느냐’는 얘기를 들을 때 아이들 때문이란 말은 못 하고 너무 힘들었다. 갔으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었을 텐데, 하하.”
딸 얘기가 나오자 그는 오히려 연방 웃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묻지 않는 게 예의다 싶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이미지 벗고 홀로 서기 가능할까
-공천 막판에 서울 중구로 간 것은 대의민주주의 원칙과 안 맞는 것 아니냐.
“꼭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미리 그 지역에 가서 열심히 활동한 사람을 뽑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열심히 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본다. 전문적인 일을 하라고 비례대표를 맡긴 건데 미리 지역구를 찍어 놓고 활동하는 것도 취지에 안 맞는 것 아니냐. 비례대표 재선 금지 조항도 너무 원시적이다. 지역구를 해 보니까 두 배는 더 힘든데 좀 더 국민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 좋다.”

-쇠고기특위 위원을 맡았는데 역시 설거지론인가.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최선을 다한 측면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릴 거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정부에서 다 정해 놓은 걸 새 정부 들어 실천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할 생각이다.”

-제6정조위원장을 맡았는데 특히 관심 가는 분야는.
“아무래도 문화와 관광 쪽에 관심이 많다. 21세기 미래산업이잖은가. 상임위도 문광위를 지원했다.”

-교육 분야도 담당인데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은 낙제점’이란 얘기가 많이 나온다.
“기본 철학은 틀린 게 없다. 개인 형편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가난의 대물림은 어떻게든 막겠다는 이 대통령의 교육철학은 올바르다. 다만 인수위 때 나온 영어 몰입교육이 사교육비 증가로 인식되면서 논란이 됐는데, 이 점에서는 분명 잘못된 측면이 있었다.”

-지난해 대선을 치르면서 안티도 많이 생겼는데.
“정치 하면 욕먹게 된다는 게 정치에 입문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안티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신 있게 일한다는 방증 아니겠나. 정치인은 연예인이 아닌 이상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원회관 515호실은 늘 문전성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 의원을 찾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이날 인터뷰 직전에도 이소연씨와 우주과학 전문가 10여 명을 만나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제 이미지 대신 콘텐트로 승부할 때 아닌가.
“콘텐트 얘기하면 억울한 면이 많다. 나, 대변인 잘했다. 잘했으니까 안 잘리고 계속했던 거다. 상임위 할 때도 일 잘하는 의원으로 뽑혔다. 일에 대한 평가보다는 외모에 대한 평가로 자리매김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을 두 배쯤 잘해야 ‘일 좀 하네?’ 이런 말을 듣는다. 최고위원 나가라는 주위의 권유를 마다하고 정조위원장을 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미지와 외모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무기였지만 그에게는 짐이었다. 이미지는 그를 단숨에 출세시켰지만 어느덧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지금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미지의 여인’에서 ‘콘텐트의 정치인’으로 어떻게 변신해 갈지, 또 그 내용은 무엇으로 채워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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