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과 합치는 HSBC, 하나·기업과 중위권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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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금융위원회가 7개월간 미뤄왔던 영국 HSBC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 심사를 시작한다고 25일 공식 발표했다. 사실상 승인을 예고한 것이다.

이로써 HSBC는 서울·제일은행에 이어 세 번째 도전 끝에 국내 시중은행 인수에 성공하게 됐다. HSBC가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취득하면 당초 계약대로 63억1700만 달러(약 6조4000억원)를 론스타에 지불할 예정이다.

◇금융계에 큰 자극=HSBC의 외환은행 인수가 마무리되면 하나·기업 은행과의 중위권 싸움이 치열해지게 된다. 3월 말 현재 자산 총액은 HSBC 서울지점이 24조9811억원, 외환은행이 87조3598억원으로 두 은행이 합치면 자산 총액 112조3400억원의 국내 6위가 된다. 하나은행(130조5000억원)과 기업은행(124조6800억원)과의 격차도 크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연구위원은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할지에 따라 은행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것”이라며 “외환은행이 HSBC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말했다.

반면 외환은행 인수를 희망했던 국민·하나은행은 인수합병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이에 따라 민영화를 앞둔 우리·기업은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대형 은행들의 짝짓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르면 9월 승인=금융위 김광수 금융서비스국장은 이날 “론스타와 HSBC 간에 체결된 국제적이고 민사적인 계약을 최대한 존중한다”며 “HSBC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에 대한 심사 절차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HSBC가 승인 신청 자료를 제출한 지 7개월가량이 지남에 따라 새로 자료 보완을 요구했고 자료가 오는 대로 심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승인 여부는 법적 불확실성의 해소 여부를 봐가면서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의 대법원 판결,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의 1심 판결이 모두 9~10월 나올 전망이므로 승인 시점도 이 때가 될 공산이 크다. 대주주가 금융자본이냐 산업자본이냐, 은행 경영 능력이 있느냐를 주로 따지는 금융위의 심사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심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를 계속 미룰 경우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론스타와 HSBC의 계약이 파기된 뒤 향후 재판에서 론스타의 무죄가 확정되면 계약 파기의 모든 책임을 정부가 뒤집어쓸 수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 노사도 환영=금융계의 큰 현안이 해결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홍익대 홍기택(경제학) 교수는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제가 HSBC의 외환은행 인수건이었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현안이 해결된 점은 높이 살 만하다”고 말했다. 숭실대 장범식(경영학) 교수는 “금융위가 장고 끝에 승인 절차에 착수했다는 것은 그동안 법률적 문제를 충분히 고려했다는 증거”라며 “또 다른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외환은행 노사도 금융위의 조치를 반겼다. 이미 노조는 여러 차례 HSBC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HSBC가 외환은행 조직을 통폐합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한 채 독립적 은행으로 경영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HSBC는 1965년 홍콩의 항셍은행을 인수한 뒤 행명과 조직을 그대로 유지했던 선례를 외환은행에도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상장도 유지키로 했다.

반면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금융위가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심사를 끝내지도 않은 상황에서 HSBC의 인수 승인을 심사하는 건 책임과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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