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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 만나 진화하는 ‘대학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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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8일 서울대 발전기금에 한 기부 보험자가 10억원을 약정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기부 보험이란 살아있는 동안 일정 기간 보험금을 납입하면 사망 후 수혜자로 지정한 기관에 보장금 전액이 기부되는 것이다. 이 기부자는 매달 보험료만 400만원씩 10년간 넣기로 했다. 발전기금의 황신애 부장은 “40세인 기부자는 신원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며 “한꺼번에 낼 필요 없이 매달 일정액씩 기부가 가능한 것에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건국대는 2일 사이버 머니 기부 사이트(http://fund.konkuk.ac.kr) 운영을 시작했다. 휴대전화나 신용카드로 1000원 단위의 사이버 머니 ‘우유병’을 구입하는 방식이다. 20여 일 만에 159만2000원이 모였다. 작은 액수 같지만 재학생과 일반인 등 88명이 1000원, 2000원씩 기부한 것이다. 건국대 전영재 대외협력처장은 “많은 돈이 있어야 기부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려고 1000원 단위에서 시작했다”며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에도 기부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학들의 기부 유치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한 번에 거액을 끌어오는 대신 매달 일정액씩 내는 보험, 소액 기부가 가능한 온라인 사이버 머니 등을 개발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과 20대, 30대의 기부도 늘고 있다.

◇“티끌 모아 태산”=기부 보험을 도입한 대학은 현재 10여 곳이다. 방송통신대와 인하대가 2006년, 한림대와 성균관대가 2007년 도입했다. 올해에만 경희대·한세대가 기부 보험을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초기 보험 가입 실적은 부진했다. 자신들이 사망한 후에야 기부금이 지급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기부자가 늘고 있다. 삼성생명 문형태 팀장은 “소액이라도 정기적인 기부가 대학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에 기부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참여도 많다. 삼성생명이 경희대·성균관대·한림대 기부 보험에 가입한 이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20~30세가 35.4%, 31~40세가 22.6%였다. 51~60세는 14.3%, 61세 이상은 1.8%에 그쳤다. 성균관대 김형일 발전협력팀 주임은 “10~20년간 매달 3만~4만원씩 1000만원을 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건국대 사이버 머니 기부자의 구성도 비슷하다. 재학생이 23%, 졸업생이 14%다. 1000원을 기부한 허고은(21·기계공학 2년)씨는 “작은 돈도 모이면 큰일을 할 수 있다”며 “큰 돈만 기부가 가능한 줄 알았는데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부는 역사가 짧거나 지방에 있는 대학들도 반긴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림대는 1982년 개교해 동문이 2만 명에 불과하나 기부 보험으로 145명에게 16억원을 모금했다. 한림대 최석규 팀장은 “기부가 서울의 특정 학교에 몰려 지방대는 기부 유치에 손을 놓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십시일반 모으면 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식, 기부 펀드·세액 공제=서울대는 이달 초 기부 펀드를 도입했다. 매달 일정액을 내서 나온 수익을 수혜 기관에 지급하는 것이다. 한 보험사는 개인연금을 대학과 가입자가 나눠서 받는 상품을 개발 중이다.

기부자들이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대학이 대신 보험에 들고 기부자에게는 기부금 형식으로 받는 곳도 있다. 기부금은 세법상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 기부금 세액 공제도 추진 중이다. 정치 후원금 세액 공제처럼 10만원까지 개인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김도연 장관은 지난 6일 대학 총장들과 만나 “세액 공제가 도입되면 대학들이 많게는 6500억원까지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의 기부 보험 담당자인 김찬오 과장은 “총장들이 재임 중 실적 올리기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학진흥재단 이상도 전문위원은 “기부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면 대학은 등록금만으로 운영하기 어려워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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