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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한 무대 위 ‘풍금의 추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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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 10면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9월 11일까지 호암아트홀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4시·7시, 일·공휴일
오후 3시·6시(월 쉼) 문의 02-751-9606~10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산골 학교에 부임한 스물세 살 총각 선생님과 열여섯 늦깎이 초등학생 소녀의 짝사랑 이야기다. 가장 중요한 소품은 ‘풍금’.
총각 선생님의 멋진 풍금 솜씨는 소녀를 설레게 하지만 어느 날 그가 다른 여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풍금을 연주하는 걸 본 소녀는 가슴이 찢어진다. 짝사랑에 심통을 부리던 소녀는 점차 총각 선생님도 자신처럼 아픈 짝사랑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어느덧 훌쩍 커서 여인이 되어 번데기 껍질을 찢고 나비처럼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풍금은 피아노와 달리 건반만 눌러서는 소리가 나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온전한 소리가 난다. 힘껏 양발을 번갈아 놀려야 푹푹 바람 소리와 함께 끊일 듯 이어질 듯 애잔하게 울려 나오는 풍금 소리. 무언가를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닮았다. 풍금은 추억의 악기인 동시에 그리움을 표현하는 메타포다. 1960년대라는 시절이, 뭘 갖고 싶다고 해서 쉽게 가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무언가 원할 때면 풍금을 열심히 밟듯 그 뒤에 많은 노력과 희생이 따랐던 시절이기도 하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동명의 영화처럼 하근찬의 소설 ‘여제자’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에선 이병헌과 전도연이 맡았던 역할에 오만석과 이정미, 조정석과 장은아가 더블캐스팅되었다. 특히 그동안 뮤지컬 ‘헤드윅’이나 연극 ‘이’ 같은 강렬한 작품을 선택해 돌풍을 일으켜 왔던 배우 오만석이 이번엔 풋풋하고 어수룩한 총각 선생님 역을 맡아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에서의 순박한 매력을 되살린다.

‘자전거 탄 풍경’이나 ‘토이’를 연상시키는 환한 멜로디의 넘버들도 세상사에 복잡했던 마음을 사르르 녹인다. 실제 나이 열 살 전후로 보이는 해맑은 어린이 배우들의 깜찍하고 똘똘한 앙상블에는 “아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 뮤지컬의 장점은 영화에서처럼 옛날 그 시절의 회고조 재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팝아트풍의 핑크색 무대와 클래식을 비트는 코믹한 안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포스트모던한 구성은 꽤 현대적인 분위기의 관극 체험을 선사한다. 정서는 올드하되 장치는 첨단을 달린달까.

극의 전개에도 별로 ‘쉬어 가는 코너’가 없다. 존댓말과 반말 사이에서 헛갈려 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말버릇이 그게 뭐냐” 장면들이나, “나 보고 아가씨래” “소풍이다 야야호” 같은 말장난, 혹은 언어 게임풍의 대사와 노랫말도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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