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트렌드] '시청자 배우'서 뜬 김량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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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김량경(27.사진)씨는 시청자 배우에서 시작해 전문 연기자가 된 특이한 케이스다. 실제 있었던 희한한 사건을 재연하는 프로그램인 '타임머신'(MBC)이 그녀의 주무대다. 제대로 연기 수업 한번 받은 적이 없지만 지난해 12월 '타임머신' 100회 특집에서 재연 배우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어릴 적부터 개그맨이 꿈이었던 그녀가 처음 방송을 탄 건 2002년 1월. 일반인 중에서 단역 배우를 뽑아 출연시키는 '타임머신'의 시청자 참여 제도 덕분이었다.

시청자 배우는 단 한번만 출연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타고난 끼와 '피나는' 연기가 PD의 눈을 사로잡았다.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코너를 촬영할 때 이마로 바가지를 깨는 장면에서 정말 피를 흘린 것이다.

"PD 선생님이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는 말에 '괜찮아요. 대신 다음에 한번 더 불러주세요'라고 했죠. 어떻게 해서 얻은 출연기회인데…. 여기서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그 후 3주에 한번씩 고정적으로 출연기회를 얻었다. 연기는 좀 서툴렀지만 몸을 사리지 않고 망가지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자 출연요청도 잦아졌다. 그러나 촬영 때마다 본업인 케이블 방송 FD(진행 보조)일을 빠져야 하는 게 부담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뒀다.

"시청자 배우 하는 동안 회사 선배들이 많이 배려해 줬어요. 촬영하러 간다고 하면 싫은 내색없이 허락해줬지요. 그랬지만 너무 미안해 계속 다니기가 어려웠어요."

연기자의 길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다른 프로그램에도 차츰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말 SBS 드라마 '때려'에서 단역을 맡아 처음 드라마 출연도 했고, 최근에는 시트콤 '논스톱4'(MBC)에도 등장했다. 케이블 TV의 리포터나 어린이 뮤지컬 배우도 맡아 활동 폭을 넓혔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연기자의 등급별 지급 규정에 따라 출연료는 회당 20만원 안팎. 몇몇 프로그램에 출연하더라도 한달 수입이 100만원 정도다. 할 수 없어 촬영이 없는 날에는 샌드위치 노점상으로 나섰다. "후회는 안해요. 방송이 좋아 방송사 청소부로 취직할까 생각한 적도 있는 걸요. 연기자를 꿈꾸는 분이라면 시청자 배우에 한번 도전해 보세요.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시청자 배우=드라마 등에 단역으로 특별 출연하는 일반인. 시청자 배우를 활용하는 프로그램으로는 '타임머신'이 대표적이며, 드라마 '대장금'(MBC)에서 기부금을 내는 조건으로 시청자 배우 10명이 출연한 적이 있다. 시청자 배우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연기가 서툴러 촬영에 애를 먹기 때문에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

'타임머신'에선 지난 11일 방송분까지 130여명이 시청자 배우로 참여했다. 보통 한회에 한두명 또는 한팀이 출연한다. 출연 희망자는 '타임머신'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자기소개서 양식을 내려받아 작성한 뒤 사진과 함께 우편으로 보내야 한다. 선발 기준은 '극의 흐름을 얼마나 잘 소화해 대사와 연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느냐'라고.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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