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北 인권' 눈감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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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박경덕 파리 특파원

14일 오후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유럽본부 본회의장 옆 라운지. 주 제네바 한국대표부 관계자와 북한대표부 관계자, 그리고 한국의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15일로 예정된 유엔 인권위원회의 대북 인권결의안 투표를 앞두고 각자 막바지 로비와 정보수집에 분주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우리 정부와 한국 NGO들 사이의 시각차가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채 세계 각국 정부 대표와 NGO, 그리고 언론인들을 만나고 있었다.

한 NGO 관계자는 이번 결의안이 북한 인권 전반을 조사할 특별보고관 임명을 요구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점을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다른 NGO 관계자는 그 결의안이 북한을 너무 몰아붙이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정부 입장은 후자 쪽에 가까워 보였다. 지난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표결에 불참했던 한국 정부는 올해는 기권으로 방향을 굳혔다고 한다.

평탄치 않은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북한에 "지금 당장 인권을 개선하라"고 목청을 높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눈앞의 어려움을 이유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문제에 고개를 돌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다른 누구도 아닌 동포의 비극에 눈을 감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북한을 돕되 자극하지 않으려 고민한다. 아름다운 고민이다. 그것은 아픔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아픔은 지금처럼 우리 내부의 갈등을 만드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상대편인 북한도 그 정도의 '아름다운 고민'은 하게 하자.

우리가 아픔을 느끼는 상황을 그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같이 아프고 같이 성숙해야 한다. 우리는 혼자의 고민만으로는 갈 수 없는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박경덕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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