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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건강과 ‘먹거리’ 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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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예로부터 한국인은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이웃을 만나면 먼저 “식사하셨습니까?”라는 인사부터 할 정도였다. 최소한 양적인 면에서는 먹거리가 풍족해진 오늘날 이러한 인사말이 요즈음 젊은 세대에 본래 의미대로 전달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먹거리는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관심사로 남아 있다. 최근의 촛불시위 사태는 말할 것도 없고,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식품 관련 소동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나 광우병처럼 만의 하나 감염되었을 때 나타나는 후유증의 정도가 심각한 경우는 먹거리에 대한 단순한 관심이나 걱정의 수준을 넘어 공포의 수준으로까지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신의 신체적 위험이나 건강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차이가 있는 것은 위험이나 건강에 대한 객관적 인식에 더하여 감성적 인식 또한 하게 된다는 점이다. 실재(實在)하지 않거나 실재하더라도 인체에 위험을 초래하는 수준까지는 아닌 경우조차도 인간은 내면적으로 주관적인 인식 과정을 거쳐 스스로 위험 수준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살기 위해서는 단 하루도 거를 수 없는 먹거리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감성적 인식이 더 민감하게 작용할 것임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실재하지 않거나 비록 실재하더라도 단지 낮은 수준의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에 대해서까지 지나치게 걱정하게 된다면, 이는 인간의 심리적 건강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때문에 과학적 연구를 통해 위험의 실재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불거진 AI에 걸린 닭, 광우병 소,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지방·콜레스테롤·포화지방산·트랜스지방산 등은 일반 사람이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눈으로 식별할 수도 없다. 이런 경우일수록 사람들은 닭고기, 쇠고기, 우유 제품 등 먹거리 걱정과 우려의 눈으로 대하게 된다.

사회 발전의 단계에 따라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변화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최근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은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삶의 질 향상을 가장 기대하며, 특히 응답자의 63%가 삶의 질 가운데에서도 ‘건강한 삶’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고 한다. 현재 주요 사망원인의 대부분이 식생활과 관련 깊은 만성 질병임을 감안하면 건강한 삶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기대와 직결된다.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이 이제 선진국 국민처럼 건강을 위해 ‘먹는 문제’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 정부의 식생활 관련 연구비 투자는 너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에서 발간되는 영양학 분야의 논문 가운데 약 절반 정도가 정부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미국의 경우 92%가 연구 지원을 받고 있으며, 편당 2.5개의 연구 지원이 국가기관이나 비영리단체로부터 받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크다.

미국 정부의 과학 사이트(www.grants.gov)에서 ‘식품과 영양’은 22개 검색 분야 중 하나며, 그 가운데 8번째로 많은 지원을 받는 학문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영양학을 학문 분류체계에서 일개 세부 분야로 그 위상을 낮게 설정해 놓고 있는 것과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영양학은 인간에 관한 과학이다. 따라서 외국에서 수행된 연구 결과를 그대로 응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과학기술 분야와는 다르다. 식생활과 건강에 관한 연구는 외국 연구 결과들을 참고는 하되 어디까지나 한국인 대상으로 연구해야 비로소 확실한 연구가 될 수 있다. 우리 먹거리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국가 과학기술 정책에서 보다 중요한 비중으로 고려되었으면 한다.

백희영 서울대 교수·영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