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파는 기술'이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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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의 삼성TV가 컨슈머 리포트지(誌)가 실시한 품질평가에서일본의 소니를 제쳤다.금년이 처음이 아니다.최근 3년 동안 내리 상위 3위권을 지켰다.VCR도 얼마 전 1등을 차지하는 개가를 올렸다.
미국시장 진출역사를 돌이켜보면 정말 대견스런 일이다.「만지기만 해도 부서진다」식의 혹평 속에 싸구려 낙인을 면치 못하던 메이드 인 코리아가,비록 일부품목에서나마 최정상의 품질을 구가해 온 소니나 마쓰시타를 제친 것은 생각지도 못했 던 일이다.
값을 비교하면 더욱 뜻 깊다.종합평점 3위인 삼성이 3백50달러,8위인 소니가 5백50달러.훨씬 싼 값으로 더 좋은 제품을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과연 좋아하기만 할 일인가.뒤집어 생각해 보자.컨슈머리포트의 이같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한국제품은 여전히 싼 값인 반면,소니나 파나소닉은 「저질」임에도 아랑곳없이 고가(高價)전략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소비자이익의 엄정한 감시자로 유명한 세계적 전문지의 조사결과가 뒷받침함에도 가격이나 판매에 별다른 영향을 못 미치는 까닭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한국제품은 우선 사기가 어렵다.컨슈머 리포트를 읽고 난 소비자가 삼성TV를 사고 싶어도 전화를 걸고 주소를 물어 한참 찾아 가야 물건 구경을 할 수 있다.
물량위주의 수출전략에만 골몰해 온 나머지 마케팅에 대한 관심도,전략도,투자도 소홀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오랫동안 품질에서 밀려 왔으니 유통에 신경을 쓸 처지가 못됐었다는 변명도 가능하다.더구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유통망을 장악하는 게어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인가.
그러나 품질에서 앞서기 시작한 시장에서조차 마케팅에 대한 투자를 계속 망설인다면 더 이상 변명은 안 통한다.
세계최고 품질의 신발을 만들면서도 대부분을 남의 이름으로 팔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경험을 잊어서는 안된다.지금부터라도 정 신 바짝 차리고 「파는 기술」을 기르는 것이다.일본이 현재 누리고 있는 기득권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그동안 미국시장에 들여 온 정성과 투자의 당연한 결과다.
이장규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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