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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날씨 느끼는 그녀 “오보 항의 빗발칠 땐 쥐구멍에라도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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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연수씨가 “사는 게 그날이 그날 같지만 늘 다르듯이 날씨도 늘 다른 얼굴로 다가와 싫증을 느낄 새가 없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만날 하는 일이지만 이때는 워낙 날씨가 죽 끓듯 해 ‘비위’를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요. 늘 비상대기죠. 이번엔 그래도 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아 다행이에요.”

기상캐스터에게 여름철은 ‘대목’이다. 찜통더위나 태풍, 장마처럼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날씨상황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태풍과 장마는 인명과 재산피해를 동반하기에 특급경계 대상이다. 특보상황이 벌어지면 날밤을 새우며 24시간 근무하기 일쑤다. 그래서 기상캐스터들은 여름이 시작되는 6월부터 여름이 끝나는 9월까지 휴가는커녕 개인적인 약속도 하지 못하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방송 초기 바캉스철이라며 방송을 위해 비키니 차림을 해본 적은 있어도 지금껏 10년 넘도록 정작 해수욕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어요. 올해도 여름휴가 대신 10월 단풍휴가나 제때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한씨는 한 번도 자신이 하는 일에 싫증을 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일이 힘든 상황일수록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이 내 목소리를 통해 생활에 정말 중요한 날씨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없던 힘도 생겨나요. 태풍이나 장마, 폭설 등 특보상황 때도 예보방송을 통해 나름대로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종종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날씨 오보 때다. 일기예보에 따라 기껏 스케줄을 잡았다가 정작 그날예보가 맞지 않아 낭패를 당하면 짜증나고 울화가 치밀게 마련이다. 바로 이달에도 주말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비가 내린다고 했다가 다시 안 온다고 했고, 결국 비가 내리는 등 갈팡질팡했다. 물론 기상청의 예보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기상청 홈페이지가 불이 났다. 주말을 망친 시민들의 항의 글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항의 전화도 빗발쳤다. 상황은 KBS도 마찬가지였다. 일기예보의 메커니즘을 모르는 시민들은 자신들이 TV를 통해 보고들은 대로 예보 내용의 출처가 방송사라고 생각하고 항의를 해댔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그녀 역시 이름값(?)을 하느라 두 배, 세 배 시달리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당신 말만 믿고 공사를 벌였다가 콘크리트가 비에 다 쓸려내려 갔으니 물어내라’ ‘비가 안 온다고 해서 수박을 잔뜩 사놨는데 허탕쳤다’ ‘놀러갔다가 비를 홀딱 맞는 바람에 아기가 감기에 걸렸다’느니…. 정말 죄송하고 속상해요. 엄밀하게 따지자면 저희 잘못은 아닐지라도 그분들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뿐이죠. 하지만 이것도 제 일의 하나라고 여기고 곧 평상심을 찾곤 하죠.”

역시 날씨로 먹고사는 프로답다. 그녀는 평소에도 온몸으로 날씨를 느끼며 산다. 아침 6시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하늘을 살피는 건 기본이고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코로 비 냄새가 실려있는지를 가늠한다. 또 출근길에 운전을 하면서도 한강 물결을 살펴 파도의 높이를 헤아리는가 하면 점심 때는 일부러 최대한 야시시한 옷차림으로 밖에 나가 동료들과 기온 맞히기 내기(소수점 한 자리까지)로 식사값을 해결하기도 한다. 물론 이렇듯 습관이 되다시피한 일상은 기상캐스터로서의 역할에 보다 충실하려는 노력의 흔적일 뿐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씨를 잘 아는 이들에겐 그녀가 기상캐스터가 된 것 자체가 ‘사건’이다. 그녀는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한 성격이었다. 교실에 들어갈 때도 남들이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워 늘 뒷문을 이용했고 출석을 확인하려고 이름만 불러도 얼굴을 붉힐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대중을 앞에 두고 강의를 하지 않나,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생방송을 하지 않나…. 그녀는 딱 한 번 기상캐스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대학입시 날 TV에서 이익선 캐스터가 검은 점이 박힌 스카프를 매고 나와 “날씨가 매서우니 목도리를 챙기면 훨씬 도움이 된다”고 방송하는 걸 인상 깊게 보고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기상캐스터가 된 걸 ‘우연적’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숫기가 없다 보니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엄마가 성격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며 연기학원엘 다니게 했어요. 항공사에 근무하던 아빠의 권유로 스튜어디스에 지원해 이미 합격해놓은 마당에 어느 날 학원 친구가 기상캐스터 모집에 함께 가자고 해 무심코 따라갔다가 그만 덜커덕 된 거예요. 얼마나 숙맥이었던지 다른 사람은 쫙 빼입고 머리와 화장도 세련되게 하고 왔는데 저는 평소처럼 그저 청바지, 가죽점퍼 차림에 생머리였어요. 결과적으론 그게 신선하게 보여 가점을 받았지만 말이에요.”

스튜어디스냐 기상캐스터냐를 놓고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한 끝이라 반드시 성공하리라 맘먹고 처음부터 열심히 배웠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원고 작성 요령부터 표정과 손짓, 발음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지도를 받았다.

“수습 4개월 만에 데뷔했는데 처음엔 정말 엉성했습니다. 지역별 날씨를 소개하면서 광주를 가리켜야 할 손이 대전을 찍질 않나, 너무 긴장해 버벅거리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질 않나, 웃음을 참느라 코맹맹이 소리를 하지 않나… 가관이었죠.”

‘초짜’시절 실수를 생각하면 한씨는 지금도 머리가 쭈뼛해진다. 지금은 가르치는 입장이라 더욱 그렇다. 그녀는 “사계절을 적어도 세 바퀴는 돌아야 기상캐스터란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선배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아마 진작 때려치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날씨뉴스는 고작 1분30초가 전부다. 그래서 더 어렵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이 짧은 시간에 맛깔나게 압축해 소화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매 뉴스 리포트마다 서너 시간은 매달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오전 5시·11시와 오후 5시·11시 나오는 기상청의 예보문을 토대로 세부사항을 취재하고, 시간별 위성사진 파악과 함께 과거 데이터와 비교해 날씨그래픽을 위한 그림 초안을 작성한 뒤 당일 사건사고를 챙겨 날씨와 연결해 원고를 작성한다. 작가가 따로 없어 모든 게 기상캐스터 몫이다.

“얼마 안 돼서는 어린 마음에 예쁘게만 보이려고 화장에 신경을 많이 쓰고, 해 모양을 만들어 마이크에 다는 가 하면 코멘트도 튀려고만 했어요.”

하지만 한 해 두 해 경륜이 쌓이면서 짧은 방송일수록 사실 전달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생활과 밀접한 방송을 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그녀의 방송을 들으면 남녀노소 어느 계층이 들어도 무난하고 편안하다. 또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나들이 가기 좋다고 하면 땀 흘리는 농민은 무시하는 것이란 생각에 코멘트 하나도 두루두루 신경쓸 정도로 노련해졌다. 그만큼 ‘물난리 눈난리 다 겪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그녀에겐 직업병도 생겼다. 길거리를 가다 누가 날씨 얘기를 하면 당장 달려가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나고, 노래방엘 가면 노래를 방송하듯이 해 웃음바다를 만든다. 또 남편이 날씨를 물으면 “응, 날씨는 맑고 낮 최고기온은 29.5도가 예상돼”라거나 “비올 확률이 60%야” 식으로 대답하곤 한다. 주간날씨를 꿰다 보니 비 온 뒤 세차를 하겠다고 미루고 미루는 통에 차가 늘 지저분한 것도 같은 증세다.

요즘 그녀는 기초적인 기상 데이터만 보고도 날씨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자신이 기상 전문가입네 하지 않는다. 뭐니 뭐니해도 기상청에 의존해야 하는 메커니즘상의 한계 때문이다. 여기에다 전문성보다는 미모를 앞세우는 방송계의 현실(한 명을 빼곤 모든 방송사의 기상캐스터가 모두 여성이다!)에서 그녀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한 이유다. 젊은 여성에게 기상캐스터는 여전히 선망의 직종이다. 석 달 전 KBS가 한 명을 뽑는 데 560명이나 몰렸을 정도다(한씨도 760명 중에서 뽑혔다). 하지만 그녀는 지원자 중 절반 이상이 기상캐스터를 방송 진출의 발판쯤으로 여긴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썩 편치 않다. 가뜩이나 전문성 부족 운운하는 판에 더 부채질할까봐 그렇다.

“오늘날 우리나라 산업에 미치는 날씨의 가치가 6조원이라는 통계도 있어요. 날씨가 개인의 일상생활은 물론 국력과도 직결돼 있다는 얘기예요. 이런 마당에 어디 얼굴만 갖고 되겠어요? 저도 곧 대학원엘 갈 겁니다.”

비오는 날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게 소원이란 그녀. 현재 그녀는 17개월 된 딸을 둔 아줌마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청순한 이미지에 전달력 높은 목소리 또한 또랑또랑 여전하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45세 기상캐스터’가 희망사항이었다가 최근 50세까지로 상향 조정했다. 그녀의 희망이 이뤄질지 두고 볼 일이다.

글=이만훈 전문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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