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냉혹한 승부의 세계, 결과가 전부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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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문학수첩, 337쪽, 9800원

“달려야 한다. 아니다. 이겨야만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은 승리해야만 한다. 그런데 당신에겐 경기를 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동료가 금메달을 따낸다. 축하해줘야 한다. 하지만 동료의 빛나는 승리가 당신에게 순수한 축복일 리 없다. 승부란 그런 것이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 글쎄….”

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에 참가했던 일본 육상 여자대표 아리모리 유코의 이야기다. 이 책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올림픽 취재일기다. 작가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취재하며 3주 가량 호주에서 쓴 글을 묶었다. 처절하리만큼 고독한 스포츠 현장을 들여다보며 호주의 역사와 문화를 양념처럼 곁들였다. 일기처럼 가볍지만 쉽게 휘발되지 않는 이유다.

“스포츠는 결과가 전부죠. 아무리 긴장하고 불안해도 만약 메달을 딸 수 있다면 ‘긴장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잘 됐다’ 하면 끝이니까요. 이겨 버리면 끝이니까.” 일본 마라톤 감독의 말은 곧 우리들의 생각과 다름이 없다. 일본 마라토너의 패배를 두고 “감독으로서 이번 올림픽을 통해 얻은 게 있냐고요? 역시 굴욕이죠.”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왠지 서글퍼진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 수많은 승리와 패배를 담담히 관찰하며 작가는 계속 이야기를 듣는다. “금메달이라는 게 뭐죠? 금메달을 따기 위해 자기 자신을 그렇게까지 버려야 하는 걸까요? 애인이 있으면 곤란한가요? 저는 결혼하고 가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경기에 임하고 싶어요. 그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자는 ‘승리보다 소중한 것’을 정의하는 대신 고백한다. “물론 나는 승리를 사랑한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기분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승리 이상으로 ‘깊이’를 사랑하고 평가한다. 때로 인간은 승리하고, 때로 패배를 맛본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영원히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늘은 동료의 금메달에 힘껏 박수를 쳐주고 내일, 그리고 또 내일, 다시 달리면 되는 거다. 설사 마지막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조용히 트랙에 입을 맞추고 ‘당신만의 레이스’를 꾸려가면 된다. 그 뿐이다.

다시 아리모리 유코의 이야기. “귀를 기울인다. 경기장을 메운 사람들의 함성이 들린다. 대지가 흔들리는 울림. 하지만 정말로 들리는 소리는 자기 안의 조용한 목소리다. 나에게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뭔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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