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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쉬 그리고 골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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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쉬들이 말하길 그들에겐 3대 비극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영국 옆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그로 말미암아 한때 식민지가 되었고 현재도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된다는 점. 둘째는 국토가 너무 아름답다는 사실, 그래서 주변국들의 침략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점. 셋째는 술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 덕분에 한 잔 술에 세상사 잊고 즐겨버린다는 점.

그러나 이 3대 비극이 우리에겐 희극이 되었다. 첫째 영국으로 집중된 관광객들을 피해 저렴한 비용으로 환대 받으며 여행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아름다운 국토에 덧씌워진 절경의 골프장이 많다는 점, 셋째 영국보다 술과 음식이 맛있고 어딜 가나 저녁 시간이 흥겹다는 점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이리쉬에게 느껴지는 규정할 수 없는 동질감이 있다.

1년 동안 30여 개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온 지금도 아일랜드를 떠올리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마도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아일랜드는 수도를 비롯한 큰 도시들이 모두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탓에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동양인을 구경하는 것이 생경한 모양이었다. 시골 동네에서는 지나가던 승용차의 아이들이 목을 빼서 우리를 구경하고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 대기도 했다. 갑자기 동네 구경거리가 되어 버린 우리에게도 그런 상황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천성이 친절하고 따뜻한 아일랜드인들은 이방인들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오고 술 한 잔 걸치면 함께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고 본인들이 더 들뜨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길을 묻는 여행객이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관광객을 외면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묻지도 않는 여행객에게 먼저 다가와 어디를 가냐고 물어보고 어느 지역에 어느 골프장을 꼭 가보라고 손수 메모를 적어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먼저 나서서더니 우리 표정이며 포즈까지 되잡아주던 아저씨, 자기들 사진도 찍어달라고 아우성치던 학생들, 골프장을 찾아 이 곳에 왔다는 우리 말에 온 동네를 수소문해서 좋은 골프장을 알아다 준 B&B 할머니도 아일랜드 외에는 없었다. 덕분에 다소 외롭던 우리 여행이 아일랜드에서 만큼은 친구들로 북적이고 에피소드가 풍성해졌다.

아일랜드 최남단의 휴양지 중 하나인 Waterford. 동선이 꼬이고 카페리를 한 번 더 타면서까지 Waterford의 Dunmore East Golf Club을 굳이 찾아간 것은 관광 리플렛에 나온 골프장 항공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푸른 바다와 붉은 해안 절벽, 그 위를 덮은 초록 골프장 사진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게다가 Waterford는 바이킹이 아일랜드에 정착한 도시로 포구가 발달해있고 ‘Sunny South East’라는 수식어를 붙을 만큼 일조량이 풍부한 대표적인 휴양지다.

이 곳에서도 우린 특별 손님이었다. 도대체 이 동네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게 되었냐며 의아해하며 반기는 B&B 아줌마와 코스의 업다운이 심하다며 무료로 카트를 빌려준 골프장 매니저, 석유를 넣어 사용하는 이 카트의 승차감은 경운기에 가까웠고 덕분에 모두들 걸어서 조용히 라운드 하는 와중에 우린 털털거리는 소음을 달고 코스를 누비게 되었다.

골프장은 하늘에서 거시적으로 바라본 모습과 눈 높이에서 미시적으로 참여관찰한 모습이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항공 사진만큼 규모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어느 골프장 보다도 바다를 가까이 끌어안고 있었고, 바다를 향해 도전적으로 샷을 쏘아대는 몇몇 홀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18홀 내내 푸른 하늘 아래에서 비 걱정 없이 플레이를 할 수 있음이 가장 반가웠다.

카트 소음 때문인지 낯선 이방인이기 때문인지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데 다른 팀들이 모두 아는 척하며 한 마디씩 인사를 건내왔다.
“나도 17번 홀에서 공을 잃었는데 뒤돌아보니 당신도 공을 찾고 있던데 어떻게 되었어요?”
“우린 매일 여기서 골프치는 이 마을 친구들이에요. 이 친구는 식당을 하고 저 친구는…….”
“어디서 왔어요?”, “아… 한국? 월드컵? 세리 팍(Seri Pak)?”

어디를 가더라도 여행객은 영원한 이방인이다. 제 아무리 많은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사전 지식으로 만들어진 틀 안에서 그 지식을 뒷받침해 줄 근거 자료를 확보하는 작업에 불과하다. 나고 자란 내 나라도 규정할 수 없는 마당에 어찌 몇 주, 몇 달을 머물렀다고 남의 것을 쉽게 개념 지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주눅 들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 여행객이고 대부분의 여행은 내 나라, 내 가족의 소중함을 환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도 역시 여행이 길어지고 여행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상황 변수가 커지자 더욱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만큼은 ‘이 사람들’ 때문에 무장 해제를 할 수 있었다, 특히 골프와 술이 버무려진 인연은 긴 시간 좋은 여운으로 남는 것 같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