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체니의 동북아 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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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일본을 거쳐 중국.한국 등 동북아 핵심 3국을 이번주에 순방한다. 체니의 순방은 이미 오래전 계획되었던 것이나 이라크 전쟁으로 약 1년이 연기돼 미 상원 휴회기를 이용해 이번에 이뤄지게 된 것이다. 대통령 선거 캠페인이 한창이고, 이라크 사태의 악화로 워싱턴 정가가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미국 부통령이 이 지역을 순방한다는 것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3개국이 지니고 있는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 북핵 문제 심층 논의할 것

체니의 이번 방문은 현안 타결보다는 한.중.일 3개국과의 유대 및 협력체제 강화에 초점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이라크에 파병한 나라고, 중국은 9.11사태 이후 미국의 대(對)테러전쟁을 지지하고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핵심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부각되는 나라다.

체니는 미국의 역대 부통령 중 가장 권력이 강하며 특히 외교안보 정책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독자적인 외교보좌진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중엔 스쿠터 리비와 같은 통찰력있는 아시아 문제 전문가도 포함돼 있다. 체니는 간혹 '네오콘'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순수한 '보수주의자'로 보는 것이 옳다. 그는 대북 강경론자지만 네오콘들이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실패할 경우 선제 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북한을 고립시켜 김정일 정권 교체를 추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설파한 사람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핵심 논의사안은 이라크와 북핵 문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과 파병,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6월로 예정된 6자회담에서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식으로의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중.일 공조체제 강화를 다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체니의 이번 여행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 같다. 공교롭게도 이라크에서 일본인 3명의 납치 사건으로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정치적 수난을 겪고 있고, 천수이볜(陳水扁)총통 재선과 함께 '대만의 독립문제'로 중국은 골치를 썩고 있는 가운데 7명의 중국인이 이라크에서 납치된 상태다.

이번 3개국 순방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이 될 것이다. 그는 총선 투표일인 15일 한국에 도착, 탄핵정국 속에서 새로 구성될 국회의원 선거결과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미국 상원 의장이며 과거 5선 하원의원의 경력의 체니에게 향후 한.미 관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한국의 총선은 주된 관심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라크 사태 악화로 파병반대 이슈가 다시 선거의 관심사로 대두되는 속에서 미국 외교안보 문제의 사실상 최고의 전문가이자 실권자인 체니가 용산기지 이전을 비롯한 한.미 동맹 재개편 문제, 북핵 문제 등을 심층적으로 논의하게 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 美 몰리는 상황 무거운 걸음

양국 간에는 그동안 한.미 동맹 재편 및 북핵문제 등에서 많은 이견이 표출돼 왔다. 아무리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양국의 입장과 시각이 서로 다른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어떻게 균형있게 조화시켜 나가느냐에 있다. 한.미 양국은 정치.경제.전략적으로 서로 꼭 필요한 상대다. 이를 위해 서로가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정치적으로 엄청난 변화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보수 정권에서 진보 정권으로 바뀌고, 한국 사회는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과 함께 한국전.베트남전을 경험한 냉전세대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보다 동등한 양국 관계를 원하는 젊은 세대가 인구의 4분의 3이 된다. 이번 체니 부통령의 방한 기회로 한.미 상호 간의 이해 증진과 관계 회복의 획기적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김승환 명지대 교수.국제정치학 美 CSIS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