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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곳이 없다, 오직 인내로 버틸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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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28면

풍비박산 해외펀드
먼저 성적표가 어떤 지경인지 알아봤다. 지난해 해외펀드의 덩치는 7조원에서 50조원으로 600% 넘게 불었다. 정부가 3년간 세금을 물리지 않겠다고 당근을 던지자 투심(投心)이 꿈틀댔다. 마침 중국이며 인도를 가릴 것 없이 곳곳의 증시에 풍년이 찾아오자 ‘펀드 러시’가 일었다. 수조원씩 덩치를 불린 펀드도 여럿 생겼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의뢰했더니 지난해 해외펀드 중 ‘자금 흡인력’ 1위는 슈로더투신의 ‘브릭스 펀드’였다. 4조원 가까운 돈이 몰렸다. 용틀임하던 ‘중국 펀드’가 주춤하던 지난해 가을부터 4개국(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분산투자라는 무기를 업고 스타덤에 올랐다. 연간 수익률도 50%로 짭짤했다.

그러나 올해 성적표(연초∼7월 8일)는 -9%에 그친다. 신용위기·경기침체·인플레이션 파고에 기대주로 꼽힌 신흥시장도 무릎을 꿇었다. ‘미국 경제와 다른 길을 가리라’던 디커플링(decoupling)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물론 20~30% 미끄러진 해외펀드가 수두룩한 걸 보면 선방한 셈이지만 낙담한 투자자도 적잖다.

대박 꿈의 선두에 섰던 ‘중국 펀드’는 더욱 아찔하다. 지난해 홍수처럼 돈을 빨아들인 상위 30개 펀드 중에서 ‘차이나’ 꼬리표를 달았던 상품이 10개에 이르렀다. 특히 ‘미차솔 열풍’을 일으킨 미래에셋의 ‘차이나 솔로몬’은 3조원을 모아 3위에 올랐고, 수익률도 79%로 전체 해외펀드에서 1등이었다. 하지만 올해 성적은 -31%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신한BNPP운용의 ‘봉쥬르 차이나’와 피델리티·KB운용의 ‘차이나’ 펀드도 연초 이후 20%대 손실을 기록 중이다. 몇 년 앞서 중국 펀드에 발을 담갔다면 상흔이 덜하겠지만, 지난해 10월 고점 이후에 ‘묻지마’로 달려들었다면 고스란히 핵 펀치를 맞았다.

국내 펀드들의 처지는 해외 쪽보다는 좀 나은 편이지만 손실을 보긴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의 ‘디스커버리’가 진공청소기처럼 2조3000억원을 빨아들였다. 지난해 수익률도 44%로 쏠쏠했다. 하지만 올해는 -18%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KTB운용의 ‘마켓스타’와 삼성투신의 ‘배당주 장기’ 펀드처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펀드도 사정은 비슷했다.

시장이 이렇듯 1년 만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자 투자자들도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최근 운용사는 물론 증권사와 은행 창구에 펀드 수익률을 되짚어 보고 환매할지 문의하는 투자자가 잇따르는 이유다.
 
솔직한 반성문
브릭스 펀드의 선두주자인 슈로더의 장득수 전무는 “숨을 곳이 없어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그래픽 참조> 시장이 정상일 땐 선진국과 브릭스 증시가 따로 갈 수 있지만 “지금처럼 미국 금융위기와 초고유가로 비정상적일 때는 신흥시장도 선진국 그림자에 갇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그간 높은 수익을 내던 브릭스 시장에서부터 외국인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 전무는 브릭스의 앞날을 좋게 봤다. 예컨대 “중국은 과거 2000년의 나스닥 거품 시절과 속도·모양이 흡사해 거품이 상당 부분 제거되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기간 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가을부터 유가가 안정되면 인플레이션 우려가 식으면서 수익률이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봉쥬르 차이나’ 펀드로 인기몰이를 한 신한BNPP의 클로드 티미아니 펀드매니저는 “글로벌 증시의 동반 하락도 문제였지만, 유틸리티 업종의 비중을 낮게 유지한 것도 패착이었다”고 털어놨다. 중국이 전력요금을 올리면서 관련주가 강세였는데 이를 놓쳤다는 말이다. 다만 그는 “글로벌 증시의 동반 침체로 수익률이 지난해보단 못하지만 올 2분기엔 에너지 업종을 확대하고, 자동차 업종을 줄인 덕에 투자지표로 삼는 벤치마크 지수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고 했다.

하락장의 방어술도 얘기했다. “공상은행(ICBC)처럼 이익이 50% 이상 늘어나는 금융주와 자산가치의 60% 수준에서 거래되는 부동산주 등을 눈여겨본다”고 설명했다. ‘포스트 올림픽 증후군’에 대해선 “개최지 베이징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에 그친다”는 말로 대신했다.

환매는 어떠냐고 대놓고 물었다. 그는 “기업 실적이 20% 증가할 전망이다. 법인세 인하와 위안화 절상 덕분에 이익이 16.5% 늘고, 경제가 10% 성장하면서 추가로 혜택을 볼 것”이라고 답했다. 이미 과도하게 환매가 이뤄져 바닥권에 근접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돈을 뺄 때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다만 상승해도 직선보다는 계단을 그리며 완만한 회복을 꾀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눈높이를 낮추라는 주문도 했다.

자원펀드 운명은
올해엔 자원부국과 원자재에 투자하는 펀드로 돈이 쏠렸다. 이런 펀드는 지난해 ‘자금 유입’ 상위 30걸에서 2개뿐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12개로 늘었다. 투심이 흔들리는 약세장에서도 선전한 지역을 중심축으로 피델리티운용의 ‘EMEA’와 SH운용의 ‘더 드림 러브’, JP모건의 ‘중동&아프리카’ 펀드엔 1000억원 넘는 현금이 들어왔다. 최근 주가 급락에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지만 다른 펀드에 비해 선방하고 있다.

JP모건 기준환 이사는 “중동·아프리카는 기업 수익성이 좋아진 데다 환율 절상 덕으로 수익률이 좋았다”며 “이집트→남아공→이스라엘 등의 편입 국가들이 서로 다른 투자 테마로 돌아가면서 수익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요즘 주춤하는 주가에 대해선 “시장이 위축되는 터키·이집트 비중을 큰 폭으로 줄이고, 요르단·아랍에미리트 같은 걸프국 투자를 늘려서 대응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글로벌 시장이 안정궤도에 올라야 자원부국 펀드도 회복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았다. 아직은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당분간 인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우리CS운용에서 ‘글로벌 천연자원’ 펀드를 총괄하는 김영준 매니저는 “70년간 자원부국들이 가격 하락세로 투자를 하지 않다가 신흥시장 수요로 공급이 부족해 원자재 값이 급등하자 호황을 맞아 펀드 수익률도 좋았다”고 말했다.

다만 “세계적 물가상승으로 원자재 기업들도 비용 증가 압박을 받아 실적 호전에 악재가 된다”고 했다. 최근 자원부국·원자재 펀드 수익률이 한풀 꺾인 것도 이런 요인을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원자재 업종의 상승 기조는 장기적이겠지만 이미 만족할 만한 수익을 거뒀다면 수익률을 실현해 현금을 확보하는 전략도 권할 만하다”고 했다.

국내에선 올 들어 환율 하락, 수출 기대감에 힘입어 대그룹주가 선방을 했고 관련 펀드도 사랑을 받았다. 1800억원이 들어온 ‘당신을 위한 삼성 코리아 대표 주식형’ 펀드의 남동준 삼성투신 매니저는 “투자 종목의 예상 이익 증가율이 연초엔 16%였으나 최근엔 13%로 낮아졌다”며 “시장을 억누르는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하반기로 갈수록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모두 떠날 때가 저평가 기업들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다만 정말 실천하기는 어려운 원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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