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동거女 성혜림씨 왜 탈출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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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정일(金正日)의 동거녀 성혜림(成惠琳)의 서방탈출은 후처 고영희의 견제와 어머니의 죽음 등으로 심각한 심리적 갈등을 겪어오다가 서울 친척들의 설득으로 마침내 결단을 내린 결과로 분석된다. 성혜림이 처음 모스크바에 가게된 것은 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김정일이 집무실 타자수 김영숙을 총애한 끝에 딸 김설송(金雪松)을 낳은데 대한 충격으로 발생한 심신쇠약증세에 시달리면서 바깥바람을 쐬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당초 평양- 모스크바를 오가던 成씨는 80년대부터 모스크바 장기체류 생활에 들어간다.김정일의 새로운 연인으로 등장한 만수대 예술단 무용수 출신 고영희의 견제가 한층 노골화됐기 때문이다.
이때 김정일은 성혜림의 보호자겸 말동무로 언니 성혜랑(成惠琅)씨와 그 아들 이한영씨,딸 이남옥씨도 동행시켰다.
그러나 이한영씨는 모스크바에 온 직후 서방으로 탈출해 남한으로 귀순했다.
김정일은 이 당시 성혜림 자매를 모스크바에 보내면서 바빌로바가의 호화아파트 3개층을 통째로 구입하는 것은 물론「15호관저(김정일 저택)」의 요리사.하녀.운전사 등을 딸려 보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서울로 망명해 죽은 줄만 알았던 이한영씨가 95년10월20일 국제전화를 걸어온 것이다.『사모님 계십니까.(서울,아들)』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씨는14년만에 들어 본 아들의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헤어질 때 22세이던 아들은 35세가 됐고 47세의 어머니는 환갑이 됐기 때문이다.成씨는 아들 李씨가 국제전화를 통해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자『볼 수 있어,우리 볼 수 있다.볼수 있게 지금 하려고 그래』라 고 말해 이때 이미 탈출을마음먹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成씨는 이어 아들 李씨가『엄마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가겠다』고하자『기다려라,지금 내가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成씨는 또 자신들이 김정일주변 여인들에게 견제받고 있다는 사실도 암시했다.『방치코(코가 망치처럼 생긴 후처 고영희를 가리키는 성씨의 은어)의 세력이 커지고 있다.방치코는 우리 자매를잡아먹으려고 난리다.
꼬투리가 잡히면 아오지탄광으로 보내겠다며 해외공관원들을 들볶고 있다.이 때문에 이모(성혜림)의 증세가 더욱 악화돼 동행하기로 마음을 돌렸다』고 말했다는 것이다.成씨는 평양의 김일성공관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30상자씩 보내주던 쌀.고 추장.된장.
생수.과일.건어물.인삼 등 부식도 수행원의 조그만 잘못을 구실로 공급이 끊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成씨 자매와의 통화가 이뤄진후 친오빠인 성일기씨가 직접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성일기씨는 가족들이 월북한 이듬해인 지난 49년 자진월북해 강동정치학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6.25하루전에 남파돼 영남지역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던중 53년 체포돼 전향했다.모스크바에서 오빠를 만난 성혜랑씨는『평양의 남옥이(딸)를 데려와야 하므로 시간이 걸린다.평양에서 설(신정)을 쇠라는 김정일의 요청에따라 12월말께 평양에 들어가 설을 쇠고 내년 1월20일께 남옥이를 데리고 모스크바에 나와 1월말께 제3국으로 나가겠다』고밝혔다는 것이다.김정일의 첫사랑 성혜림이 서방으로 탈출한 순간이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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