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와 평준화 정책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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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평준화 정책과 특목고의 양적 성장은 그 맥락을 같이한다. 고교 평준화 지역에서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전반적인 학력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월성 교육을 위한 특수목적고가 필요하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5년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발표한 ‘고교 평준화 정책의 적합성 연구’ 보고서에서는 그런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KEDI는 동일한 성적 수준을 가진 학생들이 평준화 고교와 특목고에 진학했을 때, 특목고를 다닌 최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이 오히려 더 떨어졌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고교생 8588명의 학업성취도평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력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특목고 진학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조금 뒤(2007년)에 나온 모 대학 교수들의 ‘평준화와 비평준화’라는 연구논문에서는 전혀 다른 주장이 제기됐다. 이 논문에서는 2000년 이후 평준화로 바꾼 10개 지역 115개 고등학교의 대학 진학률 변화를 분석 자료로 활용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소위 ‘빅3 대학’의 합격자 수만 놓고 비교하면 평준화 지역으로 편입된 고등학교의 명문대 진학 실적이 비평준화 시절에 비해 최대 3분의 1 이상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학부모로서는 갈피를 잡기 힘든 얘기들이다. 도대체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KEDI의 보고서는 사실 문제가 있다. 평준화 정책이 시행된 지역은 대부분 대도시였고, 비평준화 지역은 지방이나 읍·면 단위의 소도시가 많았다. 이 두 집단을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동일한 지역 안에서 평준화 집단과 비평준화 집단으로 나누어 비교 했더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두번째로 언급한 연구 논문도 ‘빅3 대학 진학=학업성취도의 완성’이라는 식의 편협된 논리를 전개한 것이고, 고등학생들의 다양한 진로적성과 진학 경로를 무시하는 왜곡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명문대 진학 만이 교육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다. 명문대 졸업이 인생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도 못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학생들의 특기적성을 무시해가면서 특목고에 밀어 넣으려는 강압적인 분위기는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년부터 서울에서 시행되는 고교 선택제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대입 자율화가 특목고 증후군에 따른 폐해를 치유해 줄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문상은
정상JLS 입시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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