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 구사일생의 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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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세돌 9단 ●·쿵 제 7단

제8보(104~117)=서슬 퍼렇던 쿵제 7단의 기세가 108에서 멈칫한다. 사지에 몰린 백이 뒤 돌아서서 이쪽을 보고 있다. 소리 없는 미소에 소름이 쭉 돋는다.

‘참고도 1’ 흑 1로 나가면 백 8에 이르러 A와 B가 맞보기. 흑에도 각종 저항의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길이든 그냥은 안 된다. 이쪽도 목을 걸어야 하는 가시밭길이다. 이긴 바둑인데 누가 그런 길을 가고 싶으랴. 이세돌 9단은 이런 심리를 꿰뚫어보고 어쩔 테냐 묻고 있다.

109로 꼬리를 내렸다. 이렇게 한 발 물러서도 백이 석 점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110, 112가 절묘하다. 흑이 114 쪽에 단수를 치고 나가도 백이 꾹꾹 막으면 장문이다. ‘참고도 2’처럼 즉시 수를 조여도 수는 난다. 백 6까지 일견 흑의 꽃놀이 패. 그러나 지금 대마가 죽어있는 백엔 C로 두어 살자는 팻감이 있다. 죽은 대마가 이때는 큰소리를 친다. 반대로 흑에는 마땅한 팻감이 하나도 안 보인다.

쿵제는 속으로 장탄식을 하며 113으로 돌아선다. 수순이 틀렸구나! 진즉 이곳부터 두었더라면 오도 뛰도 못했을 텐데 너무 성급했구나! 114로 못질하자 생떼 같은 석 점만 거저 죽었다. 차이는 또 좁혀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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