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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카지노船으로 바뀐 봉래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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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 한때 금강산 관광 유람선이었다 선상 카지노 선박으로 바뀐 ‘오마 3호’(옛 봉래호)가 홍콩 앞바다에 떠 있다.(上) 아래는 슬롯머신과 카지노 테이블이 놓인 ‘오마 3호’의 실내 전경.

"남북한의 역사처럼 기구한 운명을 가진 선박 같다."

홍콩 앞바다를 오가는 카지노 선박 '오마(澳瑪) 3호' 갑판 6층의 레스토랑. 지난 7일 밤 영업 담당 매니저 대니 충(40)은 배의 내력을 얘기하다 한숨 쉬듯 담배연기를 훅 내뿜었다. 중국계 미국인 충은 1980년대 후반 의정부의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다.

오마 3호를 운항하는 '아시아 크루즈'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각 국의 도박꾼들을 1박2일로 받는 카지노 관광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갑판 6층에는 카드 도박 테이블과 슬롯머신 등을 갖춰 놓았다.

하지만 선박 내부엔 '여자 사우나''수영장''스타 라운지'같은 한글 표지판이 서너 군데 붙어 있다. 충은 "이 배가 바로 금강산 관광의 뱃길을 열었던 봉래호"라며 "한글 표지판은 그 흔적"이라고 귀띔했다. 봉래호는 98년 11월부터 2년7개월간 금강.풍악호와 함께 50만명가량의 금강산 관광객을 실어 날랐던 배다.

봉래호, 아니 오마 3호는 한국을 떠난 다음 또다시 고초를 겪었다. 현대 아산이 임대계약을 포기한 뒤 중국인 사업가가 배를 넘겨받아 중국 하이난(海南)섬과 베트남 하롱베이를 연결하는 카지노 크루즈로 운항했다가 쫄딱 망했다. 그때까지도 배 이름은 '봉래호'였다. 배가 홍콩으로 온 것은 2002년 11월. 그 뒤에도 반년 넘게 서있다 마카오의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중국 이름 何鴻桑)의 손에 들어갔다.

고객 담당 매니저인 빈센트 푼(38)은 "6000만 홍콩달러(약 90억원)를 들여 7개월간 대대적으로 배를 수리해 카지노 크루즈에 투입했다" 설명했다.

봉래호는 이제 사실상 도박선이다. 지난해 말 운항을 개시해 평일에 200명, 휴일에 300명가량의 손님을 받는다. 손님 한명당 기본요금 500 홍콩달러(약 7만5000원)를 내면 소형 선박으로 싣고 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숙식을 제공한다. 법적으로 도박을 불허하는 홍콩을 떠나 공해(公海)상에서 카지노장을 여는 방식이다.

오마 3호의 주된 고객층은 중국의 신흥 졸부다. 이날 밤 9시쯤 100여평 규모의 카지노가 개장하자마자 12개의 테이블로 중국인들이 몰렸다.

젊은 여성을 옆에 낀 50대 후반의 한 중국인은 50만 홍콩달러(약 7500만원)가 넘게 칩을 쌓아 놓고 카드에 몰두했다. 중국산 최고급 담배 중화(中華)를 두갑이나 피우면서 새벽 4시까지 자리를 지켰다. 밑천이 20만~30만달러가 넘어보이는 30~40대의 도박꾼들도 대여섯 명이나 됐다.

회사 관계자는 "크루즈 영업으로 수익을 내려면 객실(수용인원 600명)에 60% 넘게 손님이 들어야 한다"며 "현대가 금강산 관광노선에 너무 안이하게 크루즈를 투입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금강산 유람선이었던 금강.풍악호 역시 일본.말레이시아에서 카지노 도박선이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99년 금강산 관광 붐이 한창이었을 당시 동해의 푸른 바다를 가로질렀던 봉래호에는 분단과 통일을 얘기하던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화려한 조명이 내리깔린 유람선의 갑판 위론 도박꾼들의 탄식과 남중국해의 소슬한 바람이 뒤섞여 흐를 뿐이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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