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조연>"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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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요즘 극장에서 유독 영화팬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낯선」 남자가 있다.잘 생기지도 않았고 반들반들한 이마가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같은 차가움을 풍긴다.그래서인지 맡은 역할도악한 뿐이다.더구나 그의 악함은 비상한 두뇌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더욱 섬뜩하다.
최근 극장을 자주 찾은 사람이라면 이 정도 묘사로도 대번 주인공을 떠올릴 것이다.『벼랑 끝에 선 사나이』『세븐』 『유주얼서스펙트』에 잇따라 등장해 인상깊은 연기를 해낸 미국배우 케빈스페이시(37.사진)다.
스페이시는 지난해 이 세 작품으로 전면에 부상하기 전까지 조역전문 배우에 불과했다.그러나 사실 그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86년 영화에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22편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의 전성기는 지금부터 열 릴 태세다.
주연배우로 스타덤에 오르기는 쉽지만 조역이 주연으로 발돋움하기는 힘들다.악역만을 맡은 배우가 그러기는 더욱 힘들다.
그만큼 스페이시의 성공은 그의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하고 있음을 반증한다.실제로 그는 배우로선 정통코스를 밟았다.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출신으로 제대로 된 연기수업을 쌓은 것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연극과 TV.영화를 오가며 연기한 그는 95년 할리우드의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풍자한 『벼랑 끝에 선 사나이』를 제작, 주연하면서 눈길을 모으기 시작했다.
냉혹한 영화제작자역을 한 그는 『세븐』에선 무표정하고 광기 어린 연쇄살인범으로,『유주얼 서스펙트』에서는 절름발이에 말을 더듬는 전과자로 나와 영화를 이끌어간다.
이 세편의 작품으로 그는 지난해 미국 비평가상 남우조연상,시애틀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보스턴 소사이어티 영화비평가협회 조연상을 잇따라 수상했다.이를 발판으로 출연제의가 쇄도해 올해에는 알 파치노와 함께 셰익스피어 연극에 출연한 미 국배우들을 그리는 기록영화 『리처드를 찾아』를 제작할 예정이며 6월에는 게리 시니즈.페이 더너웨이주연의 『하얀 악어』로 감독데뷔한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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