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독립과 중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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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두 달 넘게 꺼지지 않고 있는 거리의 촛불이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을 향했다. 지난달 11일 촛불시위대가 KBS 앞에서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면서 시작된 움직임이다. 며칠 후 보수단체들은 같은 자리에서 ‘정연주 사장 퇴진’을 외쳤다. KBS 촛불시위를 둘러싸고 KBS 구성원도 분열됐다.

2008년 초여름, 한국의 방송은 정치 갈등의 핵이 돼버린 느낌이다. KBS 정연주 사장 거취 문제,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등이 연일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언론운동단체들은 거리로 나서 정부의 미디어 정책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갈등은 쉬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 역시 지상파 민영화 등 앞으로 언론정책이 “보혁 갈등의 장이 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정부는 탈규제와 경쟁 논리에 따라 산업경쟁력을 키우려 하고 있고, 언론운동단체들은 이런 시장주의적 정책이 미디어의 공공성을 훼손한다고 맞선다. 특히 미디어를 정치적으로 장악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지난 정부의 코드인사로 지목한 정연주 사장에게는 물러가라면서도 방송계 주요 요직은 제 사람으로 채운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가운데 정연주 사장 퇴진운동을 벌여온 KBS 노조가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사장 선임 제도 방안을 발표했다. 이름하여 ‘국민 참여형 KBS 사장 선임제’다. 현재 KBS 이사회가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장 선임 방식 대신, 이사회와 국민대표, 사원대표가 함께 참여해 후보를 추천하고 독립적 검증 절차를 밟도록 하는 방안이다. 그 실효성이나 현실성과 무관하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파적 사장이 내려오는 관행을 막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이때 ‘정치적 독립성’에 대해 한 가지 짚어볼 것이 있다. 정치적 독립성이란 특정 정파에 유착되거나 부당한 정치 압력에 예속되지 않는다는 뜻이지, 정치 그 자체로부터 무한히 자유롭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현대사회가 각 집단 간 이해관계가 얽히고, 일상이 곧 정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순결한 정치적 독립성이란 어쩌면 허언일 수 있다.

이때 공영방송 사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100% 정치적 독립성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중립성에 가까운 게 아닐까.

특정 정치집단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지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지 세력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시키는 것 못지않게 다른 집단의 이해를 어떻게 조정하고 중재하는가가 더 중요한 역량일 수 있다.

또 그렇게 본다면, 처음엔 순결했던 촛불이 정치적으로 변질됐다고 보기보다, 그 촛불의 정치적 내용이 달라졌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