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긴 기다림 뒤 렌즈속엔 마침내 全씨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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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기자는 현장을 지켜야 한다.」 언론계에 회자(膾炙)되는 지극히 평범한 말이다.또한 기자들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직업윤리이기도 하다.이 점에서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장기간에 걸쳐 완성된 「쿠데타」주범 전두환(全斗煥)씨 모습을 한컷의 사진에 담고싶은 마음은 직업적 욕심을 넘어 생생한 「사실(史實)」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3일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全씨가 단식치료를 위해경찰병원에 입원한 것을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사진촬영을 위한 「지구전」을 시작했다.
국내 유일의 직경 1천7백㎜ 망원렌즈가 2백 떨어진 全씨 병실을 마주보는 K빌딩 6층의 가정집에서 「불침번」을 섰다.팽팽한 긴장속에 날이 밝아오는 아침부터 병실의 커튼이 닫히는 시간까지 하루종일 카메라를 들여다 보는 나날이 계속됐 다.하지만 병실 유리창이 짙게 선팅되어 있는데다 커튼이 쳐져 좀처럼 全씨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커튼이 조금 열리기라도 하면 긴장속에렌즈를 고정시켰으나 어렴풋한 사람형체만 보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던가.공교롭게 全씨가 내란수괴로 기소되던 23일.새벽부터 카메라의 초점을 응시한지 3시간,유리창 선팅의 어두움을 걷어내는 햇빛사이로 全씨의 상반신이 나타났고 카메라 셔터가 섬광처럼 찰칵거렸다.
「난국을 극복한 영웅」에서 16년만에 「국권을 찬탈한 난적」으로 기막힌 인생유전을 겪고 있는 全씨의 초라한 모습이 국민앞에 공개된 순간이었다.
이 사진이 나간뒤 많은 독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격려전화를 받았다.어떤 독자는 『눈을 부릅뜨고 사회를 감시하는 치열한 기자정신을 계속 발휘해 달라』며 「축시」를 낭독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격려를 채찍으로 알고 독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신속.정확한 뉴스를 전달하는데 힘쓸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김경빈 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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