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달력에 X표 260번 … “속죄 골 받아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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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이 경기 전에 센터서클에서 절을 하라고 하셨는데 쑥스럽기도 하고, 골을 넣으면 할 생각에 아껴뒀죠.”

방승환(25·인천 유나이티드)이 돌아왔다. 그리고 사죄의 골을 터뜨렸다. 골을 넣은 뒤 방승환은 장외룡 감독과 감격의 포옹을 한 뒤 인천 서포터스 쪽으로 달려가 감사의 큰절을 올렸다.

지난해 10월 3일 전남과의 FA(축구협회)컵 4강전에서 웃통을 벗고 심판 판정에 강력히 항의해 1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던 방승환. 그는 징계 260일 만인 26일 축구협회의 사면을 받았고, 28일 K-리그 광주전에 출전해 전반 31분 선제골을 넣었다. 12분 뒤에는 라돈치치의 골을 어시스트해 인천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그간 방승환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달력에 ‘X’표를 해 가며 복귀할 날만 기다렸다”는 그는 “징계를 받고 한 달간은 휴대전화도 끄고 집에 틀어박혀 반성하고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9개월이었다.

징계 기간에 그는 미뤄뒀던 발등과 어깨 수술을 하고 재활을 시작했다. 복귀 후 최고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장 감독은 “승환이가 9개월 동안 생활 자체가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많은 노력을 해 왔다”고 말했다. 새벽에도 홀로 체력훈련을 했고, 1군 선수들이 괌 전지훈련을 떠났을 때도 묵묵히 2군 선수들과 국내에서 땀을 흘렸다. 그리고 수시로 구단 직원에게 물었다. “저 언제 사면돼요?”

성공적인 복귀 뒤에는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전 주장 임중용과 장 감독이다. 결혼한 지 1년, 신혼을 즐기기에도 모자란 임중용은 방승환이 외롭고 힘들어 할까 봐 매일같이 그를 불러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웠다. 장 감독은 1년 영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처음 선수단과 만난 날 “승환이 어디 숨어 있나. 괜찮다, 나와라” 라며 먼저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방승환은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그 길었던 시간이 너무 힘들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반성의 기간에 방승환은 인천의 유치원 순회 축구교실에서 일일 교사로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아이들이 처음엔 잘 안 따르다가도 진심으로 대하니 어느새 곁에 와서 놀더라”며 “이 예쁜 아이들이 나중에 나처럼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숱하게 했다”고 말했다.

방승환은 “이제는 심판이 어떤 판정을 내리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수비하러 뛰어갈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K-리그 동료들도 우리에게 월급을 주시는 분이 팬이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페어플레이 전도사’가 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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