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인터넷 미디어를 제도권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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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싫든 좋든 오늘의 인터넷 문제 인식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첫째, 공동체의 문제다. 200년 가까이 저널리즘이 큰소리칠 수 있었던 것은 다기한 사회 집단을 통합하는 접착제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다. 작금 주류 언론이 신뢰 추락의 위기에 놓인 것은 한국 사회 전체를 통합하는 접착력이 떨어진 탓이다. 물론 주류를 대신할 것 같다는 인터넷도 그 길을 답습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사람들을 모으는 집결력은 탁월하지만 더 나아가지 못한다. 오히려 끼리들 사이의 차이를 강화한다. 문제를 드러내는 데는 탁월하지만 추스르지는 못한다.

둘째, 참여의 문제다. 집단 간 간극 해소의 실패는 사람들이 모이는 방식, 즉 참여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참여 방식은 참여하는 사람의 수는 많지만 질이 낮은 참여를 낳는다. 참여하기 어려운 문턱 높은 참여 방식은 참여자가 적지만 대신 높은 수준의 참여를 이끌어낸다. 인터넷 게시판 글을 읽는 것이 전자라면 신문에 기고하고 토론하는 것은 후자다. 욕설과 비난, 일방적 뇌까림은 토론이 아니다.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교환하는 대화가 쓰기와 토론에 속한다. 전자는 담론소비적이고 후자는 담론생산적이다. 우리 인터넷 담론 행태는 안타깝게도 아직 전자에 가깝다.

셋째, 담론 주체의 정체성이다. 생산적 참여의 핵심은 저자의 정체성이 분명하다는 데 있다. 이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 표시다. 집단 지성의 대표적인 예인 ‘위키피디어’는 의견의 중립화라는 외길을 추구한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편집진들이 편집 과정을 통해 개별 저자들의 독자성을 중화시킨다. 수십 쪽에 달하는 금지행위 목록을 들이댄다. 이 때문에 위키피디어에 ‘전제주의’라는 예기치 못한 판결을 내리는 연구자들이 있다.

요컨대 인터넷은 파편화된 공동체의 통합을 위해 말하는 자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이들의 성찰과 고민의 교환을 통해 질 높은 참여를 이끌어 내는 생산의 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인터넷 선구자들이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 시민의 공동 생산, 프로페셔널 수준을 갖춘 아마추어의 담론 생산을 추구하는 ‘프로-암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실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넷 시대에도 자기 이름 내걸고 책임지겠다는 프로페셔널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포털이든 언론사 닷컴이든 모든 인터넷 공간은 다 마찬가지다. 특히 포털로 대변되는 인터넷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악성 댓글과 괴담 유포를 차단하는 1차적 방법은 실명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이미 공룡 기업으로 커 버린 거대 포털들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포털에 게재되는 뉴스뿐만 아니라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콘텐트에 대해서도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기존 언론규제 규범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 역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한 가지 더. 국민들에게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네티즌으로서의 윤리의식을 심어주는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일도 빠뜨릴 수 없다.

김사승 숭실대·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