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가는길>오대산 서대 염불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서대(西臺)염불암(念佛庵)으로 가는 산길 초입부터 고목들이 넘어져 있는게 보인다.
나무도 나이가 들면 골다공증을 앓는지 속이 텅빈 채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은 벌써 십수년이 흐른 듯 검붉은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고목의 그런 모습은 왠지 겸손하다.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지극히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염치없는 인간들처럼 호화 분묘니,묘지 공원화니 하여 죽는 순간까지도 허명을 남기려 하는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것이다. 자신을 키워줬던 어머니인 산에 아무런 이름없이 겸허하게 안겨 있음이다.
조금 더 오르니 잔설 속에서 드러난 산죽들이 시퍼렇다.그리고고목의 가지를 치며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염불암의 독경소리처럼 갑자기 가깝게 들려온다.
문득 일주문처럼 버티고 선 두 고목 사이에서 걸음을 멈춰 본다.일출(日出)을 보고자 이렇게 새벽부터 염불암을 찾아가는 것이 정진하는 스님에게 방해되는 일은 아닐까 해서다.
서대를 기억하게 하는 또하나의 명물은 우통수(于筒水).한강의발원지라고 해 유명한 조그마한 샘이 서대 입구에 있는데 그 물을 우통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염불암은 신라때부터 조선초까지는 수정암(水精庵)이라 불렸다고한다.고려말 선비인 권근(權近)의 「서대 수정암 중창기」에도 그렇게 씌어 있음이다.
그러니까 수정암에서 현재처럼 염불암이라 불린 것은 조선 후기부터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이윽고 우통수에 다다른다.돌로 이뤄진 정사각형 모양의 이 조그마한 샘이 한강물의 시원(始原)이라고 하니 신기하기조차 하다.여기서 한방울의 물이 흘러 도도한 한강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우통수는 다인(茶人)들 사이에 성지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것은 다른 곳의 물보다 무게가 무겁고 빛과 맛이 변치 않아 차물로 최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통수의 샘에서 너와집의 암자까지는 스무걸음이나 될까.우통수로 목을 축이고 암자에 이르자 일출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다.비록 한반도의 암자들 중에서 가장 초라한 암자지만 일출의 빛살을받는 염불암은 그대로 등신불(等信佛)이 돼 빛나 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암자는 너무 적막해 엄숙하다.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토방에 단정하게 놓여있는 검정고무신 한켤레 뿐이다. *상원사에서 2.8㎞ 떨어진 곳에 있지만 경사가 심한길이므로 쉬엄쉬엄 한시간 정도는 걸어야 암자에 다다른다.
정찬주 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