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번역·감수 정지민씨 “제작진 의도대로 편집해 놓고 왜 번역 탓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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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 700여 명이 20일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앞에서 ‘광우병 선동 방송 MBC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변선구 기자]

MBC ‘PD수첩’의 번역·감수자 정지민씨는 25일 PD수첩 시청자 게시판에 자신의 입장을 올렸다. 정씨는 이날 오전 9시18분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생방송 중 (진행하는 PD가) ‘실수’로 다우너 소를 광우병 소라고 한 것은 실수치고는 엄청나지 않으냐”고 말했다.

정씨는 “그런데 (해명 방송에서) ‘영어 번역에 신경 쓰겠다’고 한다면 번역자로 이름이 올라간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번역이 이뤄진 후 제작팀에서 결정해 ‘vCJD(인간광우병)로 통일, 또는 다우너 소=광우병 우려 소로 통일’한 것이니까 제작 의도 및 편집 목적이 광우병의 위험성 강조였음을 깨끗이 인정해야지, (PD수첩 측이) 번역에 신경을 쓰면 되느냐”고도 말했다. 그는 “감수 중 계속 다우너 소를 너무 강조한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그러면 제작진이 ‘광우병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랬다’고 변명해야지, 번역을 운운하면 되느냐”고 덧붙였다. 정씨는 PD수첩의 시청자 게시판에서 다른 네티즌들이 자신을 비난하자 수차례 글을 올려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다음은 정씨 글의 요지.

“시청자가 본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 1편에 들어간 영어자료 중 상당 부분을 번역, 감수했다. 어느 방송이건 의도가 개입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제 경우 일반 시청자보다 훨씬 방송 내용에 대해 시니컬할 수밖에 없다. 워낙 많은 자료를 봤고, 정작 TV에 나가는 것은 방송의도에 맞는 부분들이니까 그렇다. 제가 본 것의 몇 십분의 일이 나갈까 말까다. 어떤 것은 몇 시간짜리 자료인데 하나도 안 나간다. 최종적으로 제작진이 원하는 대로 편집이 이뤄진다. 그 다음에 감수에 들어간다.…(중략)…그 과정에서 다우너 소 문제를 제기했다. 동물보호단체가 찍은 영상을 바로 광우병 우려 소라고 칭하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조·중·동’에서 내 얘길 사용하더라도 ‘PD수첩이 번역’ 운운하며 슬쩍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PD수첩 측은) ‘광우병이 본질이니까 과장이나 오해의 여지가 있었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있는 대로 말해야 한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모두 제작의도가 ‘오버’였기에 그런 것이다. 지금 문제는 (영어 자료의) 원문의 어떤 부분이 아니라 ‘다우너 소=광우병’으로 인식되도록 제작, 편집했고 생방송 중 (다우너 소를 광우병으로 이해할 만한) 멘트까지 그렇게 했다는 것인데, 그러고 나서 24일 사과방송에서 ‘번역에 신경 쓰겠다’고 한 것이 문제다.”

PD수첩의 조능희 책임프로듀서(CP)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씨는 이번 프로그램 영어 번역자 13명 중 한 명으로 전체 프로그램 가운데 영어 편집 부분에 대한 감수를 맡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는 광우병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당시 다우너 소가 광우병 의심 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번역한 내용은 그대로 방송되지 않으며 PD가 중요한 부분을 고친 후 내보낸다”고 설명했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PD수첩 시청자 게시판에 25일 번역작가 정지민씨가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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