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본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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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무를 뜻하는 한자 ‘목(木)’의 아랫부분에 한 획을 더하면 뿌리를 나타내는 본(本)이라는 글자가 된다. 역시 윗부분에 길게 한 획을 더 그으면 가지라는 뜻의 말(末)이라는 글자로 변한다.

한자가 만들어지는 여섯 가지 방법(六書) 중에서 사물의 상태나 수량을 가리키는 지사(指事) 방식의 한 사례다. 두 글자를 합치면 뿌리와 가지를 뜻하는 ‘본말’이라는 단어가 된다.

본말이라 함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긴다. ‘사태의 본말’이라고 했을 때는 어느 한 사정에 담긴 전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의 진정한 함의는 말뜻 그대로의 뿌리와 가지에 있다.

뿌리는 본질이며, 거기에다 줄기라는 단어까지 합쳐 사물의 본체를 형성한다. 이른바 근간(根幹)이다. 흔들려서는 안 되는 원칙이자 요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를 잘 맺으니…”라고 했던 세종대왕 시절의 ‘용비어천가’를 떠올리면 된다.

이에 비해 가지는 사물의 끝이다. 말단(末端), 신체에서 가장 끝에 존재하는 신경을 표현할 때 붙는 말초(末梢)라는 말이 이 글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단어들이다. 사물의 끝에서 나타나는 상태를 주로 이르는 것으로, 본원적인 것보다는 지엽적인 것과 임시적인 것을 표현한다.

큰 것과 작은 것, 핵심과 지엽말단. 본말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대칭을 이루면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동양 정치사에서는 이를 구분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그렇지 못한 상황을 ‘근간을 버리고 말단을 좇는다(舍本逐末: 『여씨춘추』)’, ‘사물에는 본말, 시작과 맺음이 있으니 그 앞과 뒤를 잘 가려야 한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대학』)’고 표현해 경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마침 우리가 늘 쓰는 컴퓨터를 일컫는 한자어가 단말기(端末機)다. 단말이라는 두 글자 모두가 ‘끝’을 나타낸다. 서버에 축적된 데이터를 출력하고 또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면서 실생활에 맞게 사용하는 끝 단계의 설치물이다.

요즘 이 단말기를 통해 펼쳐지는 인터넷의 세상이 우려할 만하다. 정보의 거짓 가공과 감성적 확산 때문이다. 한국 인터넷은 이제 상당 부분 공권력을 공격하고 내 뜻과는 다른 남을 공격하는 장소로 변한 느낌이다.

인터넷에 관한 한 단말기는 이제 말단기로 표현하는 게 어떨까. 말단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흐르는 곳. 제어된 감성보다는 무절제한 감성이 넘치는 영역이다. 사태의 본말을 따져 차분한 의론이 펼쳐지기보다는 감성적 대응이 우선이다. 한국 인터넷이 자칫 광포(狂暴)한 감성의 사회로 우리를 이끄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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