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7배 지역구 언제 다 돌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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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충북 음성에서 만난 한나라당 오성섭 후보는 양말까지 벗어보이며 "하도 걸어다녀서 발톱이 4개나 빠졌다"고 했다.

음성에다 진천.괴산.증평 등 군이 4개나 합쳐진 넓디넓은 선거구를 다니느라 발바닥에 물집이 쉴새없이 잡힐 정도라는 하소연이었다.

같은 지역의 정우택(자민련)후보도 "평소에 운동을 좀더 많이 할 걸 그랬다"고 푸념했다.

선거 유세가 본격화된 가운데 지난 2월 선거구 획정으로 시.군이 합쳐져 면적이 훨씬 넓어진 선거구의 후보들은 그야말로 '체력전'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현재 4개군 이상이 묶인 선거구만 다섯곳이다. 3개 이상 시.군이 모인 곳은 훨씬 더 많다.

이 지역의 후보들에게는 어떻게 드넓은 선거구에서 자신의 얼굴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느냐가 당선의 관건이다. 그러나 엄격한 선거법 때문에 후보가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별로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러자니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정신없이 다녀야 한다. 마을 간 이동에만 짧게는 40~50분, 길게는 1시간30분씩이나 걸려 길바닥에 버려지는 시간만도 엄청나다.

강원 영월-평창-태백-정선에 출마한 김용학(한나라당)후보는 "너무 넓어서 힘들다. 다른 군으로 가려면 시속 120㎞씩 밟아도 1시간씩 걸린다"며 "한 시.군에 가면 거기서 자고 다음날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곳은 당초 영월-평창과 태백-정선의 2개 선거구였으나 지난번 선거구 획정 때 하나로 합쳐졌다. 면적만 서울의 7배나 된다. 이곳의 이광재(열린우리당)후보 측은 "4개군에 읍.면.동이 48개인데 선거기간에 다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자칫 유권자들이 후보 얼굴도 모르고 투표하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철원-화천-양구-인제에 나선 민주당 이용삼 후보도 "철원에서 인제까지 차로 무려 4시간이나 걸린다"며 "지역구를 다 찾아가기도 어렵다"고 했다. 전북의 무주-진안-장수-임실, 경북의 봉화-울진-영양-영덕 등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다보니 후보들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강행군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어서 감기에다 몸살은 기본이라고 하소연했다. 누가 더 강한 체력을 가졌느냐에 따라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갈릴 판이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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