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국민 가슴속 고이잠든 미테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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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프랑수아 미테랑 전대통령이 8일 타계하자 프랑스 국민들은 깊은 애도에 잠겼다.
오전11시쯤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한겨울의 햇볕아래 그가 살던 파리7구의 조그마한 아파트 건물 앞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100여명 남짓한 일반 조문객들은 손에 사회당과 그를 대통령으로 탄생시킨 81년 대선의 상징인 빨간 장 미 한 송이를 든 채 눈시울만 붉게 적셨다.간간이 『우리 대통령』이라며 오열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레지스탕스에서 사회주의자를 거쳐 최초의 좌파 대통령에 이른 그의 소설같은 일생을묵념속에 되새김하는 듯했다.
국민들은 미테랑을 통해 좌파가 우파를 대체할 수 있다는 변화의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체험했다.주당 노동시간을 39시간으로 줄이고 유급휴가를 늘리며 정년을 단축한 사회주의적 정책을 민주적 시장경제와 조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고수하면서 국제무대에서 프랑스의 독특한 위치를 만들어낸 것도 그였다.특히 오늘날 단일시장에 이어 단일통화로 이어지고 있는 유럽통합은 그를 지도자로 선택한 대가였다. 그렇다고 미테랑에 대한 기억들이 결코 모두 장밋빛으로 남아있지는 않다.젊은 시절 한때나마 나치의 꼭두각시였던 비시정권에협조했다는 의혹은 베일에 가려있다.14년이라는 긴 세월은 도청파문,그린피스선박 폭파,피에르 베레고부아 전총리등 측근들의 이유모를 연쇄자살등 각종 스캔들로 얼룩졌다.이 양면적인 미테랑의모습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그는 50년간의 정치역정에서 단 한번도 개인적인 축재나 영달로 지탄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그의 이상은 프랑스를위대한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최고의 문화대국을 유지하면서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인 동시에 외교적으로 독보적인 위상을 누리게한 공은 미테랑이 남긴 14년의 결산서였다.결국 프랑스 현대사에서 우파의 드골에 버금가는 좌파의 미테랑으로 한 장을 장식했다.
퇴근길이 되면서 미테랑의 유해가 안치된 건물은 그의 떠남을 슬퍼하는 빨간 장미의 숲으로 어느덧 변해가고 있었다.
고대훈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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