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앵커맨과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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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앵커(anchor)는 배를 붙들어 매는 닻이다.릴레이 경기에서는 마지막 주자(走者)를 의미한다.골 라인에서 승부는 이 앵커에게 달려 있다.앵커맨이란 말은 1952년 미국 CBS-TV의 프로듀서 던 휴위트가 만들어냈다고 한다.시청자 에 대한 뉴스 전달의 승부는 릴레이의 최종주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함축이다.뉴스시간대에 시청자들을 TV앞에 붙들어 매는 사람으로 의역(意譯)도 가능하다.
앵커맨의 효시는 역시 「세기의 앵커맨」 월터 크롱카이트다.62년 4월16일 크롱카이트가 CBS 저녁뉴스의 앵커로 데뷔했을당시 프로그램은 15분짜리였다.NBC의 헌틀리-브링클리 리포트가 더 우세했지만 신문들의 1면기사를 요약,전달 하는 형식이었다.63년 9월 CBS는 이를 30분짜리로 포맷을 바꾸고 케네디대통령의 단독인터뷰로 크롱카이트시대를 열었다.TV 저녁뉴스 30분 가운데 CM시간을 뺀 23분은 앵커 몫이라 해서 지금도「월터 타임」으로 통한다.크롱카이트 의 앵커 20년은 곧 앵커맨의 역사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공인(公人)」이었다.격동과 급변의 와중에서도 항상 제자리를 지키는 믿음직스런 닻이었다.그는정직.성실.신뢰.프로정신의 네가지를 앵커의 덕목으로 삼았다.『앵커는 평론가도,분석가도 아니다.뉴스를 정직하게 곧바로 알기 쉽게 전달하는 사람이다.냉정함과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중도주의가 그 신뢰의 생명』임을 강조했다.그는 자신에게 넘겨진 뉴스원고를 전달이 편하고 객관적이며 이해하기 쉬운 말들로 고쳐 썼다.「앵커는 엔터테이너도,명사도 아닌 한 사람의 기자」임을 고수했다.워터게이트사건의 난마(亂麻)같은 정치드라마를 쉬운 방송언어로 명쾌하게 전달한 23분짜리 특집은 방송리포트의 한 금자탑으로 꼽힌다.
백발에 푸른 눈을 가진 79세의 이 「빅토리아 노신사」는 매년 새해면 오스트리아로 가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를 공영방송시청자들에게 실황으로 전한다.앵커시절 자신은 『100% 기자였다』며 『뉴스를 팔되 자기 자신을 팔지 말라』는 명언을 남겼다. 얼굴 팔린 사람을 찾다보니 앵커자리가 정치적 입신(立身)의징검다리로 변한 우리의 세태는 한 폭의 희화(戱畵)다.앵커맨십은 물론,나라정치의 장래에도 결코 바람직스런 일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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