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보조금 안 받겠다” … 오바마‘직접 모금’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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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19일 연방정부의 대선 보조금을 받지 않고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선거자금 지출에 일정한 제한을 두는 공공 선거보조금(public financing)을 이용하지 않고, 선거자금을 스스로 모금해 마음대로 쓰겠다는 것이다. 1976년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보조금을 거부한 대선 후보는 오바마가 처음이다. 올해 대선 때 후보 1인에게 지급되는 규모는 8500만 달러(약 870억원)에 달한다.

미국의 공공 선거보조금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정치 개혁 차원에서 도입됐다. 정치인이 선거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패를 막고, ‘큰손’(대규모 헌금자)이 정치에 개입하는 걸 차단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선거보조금은 국민 세금(납세자 1인당 3달러)으로 충당된다. 이를 받는 후보는 그 금액 내에서 지출해야 하며 개인적인 모금을 할 수 없다.

한국의 선거공영제와 유사한 이 제도를 당 경선 때가 아닌 대선 때 이용하지 않겠다고 한 대통령 후보는 오바마가 처음이다.

오바마는 지난해 11월 ‘대통령 후보가 되면 대선 때엔 공공 보조금을 받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그 제도를 보존하기 위해 공화당 후보와 합의하는 걸 공격적으로 추구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이후에도 몇 차례 같은 얘기를 했다. 그런 그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 측과 상의하지 않은 채 선거자금을 무한대로 쓰는 길을 택했다.

그건 자신의 선거자금 모금력이 매케인을 압도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지난해부터 올 4월까지 2억5600만 달러를 모았다. 매케인은 같은 기간 동안 9300만 달러를 모금했다.

오바마는 “대선에 적용되는 선거보조금 제도는 고장 났다”며 “고장 난 시스템을 이용하는데 노련한 적수(매케인)와 상대해야 하는 만큼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또 “매케인은 자신을 지지하는 기관들이 무한대의 (기관별) 자금 모금을 통해 나를 중상모략하는 걸 막지 않고 있다”며 친공화당 조직의 공격에 맞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매케인은 “선거는 신뢰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며 “오바마는 약속을 지키겠다 해 놓고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나는 보조금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AP통신은 “오바마가 위선적이라는 논란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매케인을 지지하는 기관이 자신을 공격한다는 걸 이유로 내세웠으나 현재 그런 기관은 거의 없고, 오히려 오바마를 지지하는 기관이 매케인을 공격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오바마, 표 많이 얻고 질 수도”=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19일 “11월 대선에서 오바마가 유권자 총득표에선 매케인을 앞서고 나서도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는 뒤져 낙선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당시 공화당 후보에게 패한 민주당 앨 고어 전 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오바마가 캘리포니아·뉴욕주처럼 고학력에 부유한 자유주의자들이 많은 해안 주에서 압승하고, 남부 지역에선 흑인 덕분에 매케인을 바짝 추격하지만 이기지는 못한다. 매케인은 공화당 표밭인 텍사스와 조지아주에서 과거보다 작은 격차로 이기고, 노스캐롤라이나와 인디애나주 등에선 부시보다 낮은 득표율로 신승하지만 선거인단은 전부 획득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오바마는 득표 수에선 이기고도 선거인단 수에선 진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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