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이후' 고민에 빠진 시민단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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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시민단체들이 최근 대규모 촛불집회를 경험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시민운동의 성공이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달렸다는 점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경희대 NGO 대학원 김상준 교수는 "촛불집회에 모인 인파가 '동원됐다'는 일부 시각은 시민단체를 과대평가하고 평범한 시민 개개인을 과소평가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동안 시민단체가 시민의 요구사항을 '대행'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시민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최열 공동대표도 "지금까지 시민단체의 집회에선 많이 모여봐야 1000여명이 고작"이었다며 "그동안의 집회는 시민단체 활동가들끼리만 모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1987년 민주화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존의 반정부.반체제적 운동 속에 뒤섞여 있던 경제개혁.환경.인권 등 다양한 요구가 합법의 틀 안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는 "부문별 활동으로는 사회 전체를 바꾸기에 역부족"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시민단체는 다시 정치문제에 집중했다. 1000여개의 시민단체가 하나의 연대 기구로 모인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시민단체의 영향력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이번 4.15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은 2000년의 낙천.낙선운동 때와 같은 시민들의 호응을 기대했다. 그러나 시민운동 진영이 낙선.당선.공명선거 등 세 갈래로 나뉘어 사회적 관심을 제대로 끌지 못했다. 지난 대선 때 위력을 보인 네티즌들에게 밀려 '낡은 운동'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민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고심하던 시민단체들은 탄핵정국에서 촛불집회를 주도하면서 다시 시민들을 결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촛불집회의 효과를 이어가기 위해 시민단체들은 '탄핵지지 의원 전원 낙선 대상 반영'이라는 전술을 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의 한 인사는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며, 시민단체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며 "구체적 정책이나 인물 평가 없이 '탄핵'이라는 단일 기준만이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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