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박영훈, 77로 한방 먹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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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세계바둑오픈 결승전 제3국
[제4보 (71~91)]
白.趙治勳 9단 黑.朴永訓 5단

趙9단은 액션 영화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도 그를 맞히지 못한다. 온갖 종류의 사지에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평생 침투와 폭파를 반복해온 趙9단에겐 어느덧 내 돌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믿음이 오늘 또 趙9단을 구했다.

백△로 붙여 상변 흑진에 깊숙이 침투했던 백은 드디어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71에 72, 74로 모양을 갖추며 대해로 나간 것이다. 박영훈5단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실리파인 朴5단은 집에서 앞서 있어야 정신적으로 안정된다. 그러나 지금 흑은 본진이 깨져나갔다. 곤마를 쫓아 집을 벌어들일 수 있겠지만 그건 얼마나 멀고 고달픈 길인가!

75를 곁눈으로 보며(75는 흑 대마를 안정시키며 A로 넉점 잡는 수를 보고 있다) 趙9단은 76으로 날씬하게 날아든다. 상변도 이것으로 큰 집은 없다. 오랫동안 사지를 헤매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던 趙9단의 얼굴이 비로소 편안해진다.

그러나 趙9단은 76에 중대한 결함이 있고 그 결함이 이미 박영훈에게 포착된 사실을 알지 못한다. 77. 이 한 수에 趙9단은 뜨끔해진다. 설마 하고 들여다보다가 점차 얼굴이 붉어진다. 76은 찰나의 방심이 빚어낸 과수였다. 날일자가 아니라 그냥 한칸 뛰어야 했다.

'참고도' 백1은 흑2로 끊겨 안 된다. 부득이 78로 막았으나 79가 놓이자 B의 절단이 있다. 80으로 이를 방비하자 81로 뚝 끊겨버렸다. "큽니다"라고 양재호9단이 말한다. 한점이 그리 클까 싶지만 이 한점을 잡는 순간 상변 흑집이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바둑은 단번에 형세불명으로 변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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