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한번꼴로 경기부양책 내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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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주요 경기부양책만 16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4일 본지가 재정경제부.산업자원부.노동부 등 7개 경제 관련 부처가 내놓은 정책을 취합한 결과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틀에 한 건꼴로 내수 부양과 일자리 창출정책이 발표된 셈"이라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에도 '선거를 앞둔 총선용'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라고 지적했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발표된 정책 중 일자리 창출과 소비 부양책이 각각 6건, 3건으로 나타났다. 또 이 두 가지와 연관된 투자활성화 대책이 7건으로 조사됐다. 정부 부처별로는 재경부 7건, 산자부 3건, 노동부 2건 등이었다. 나머지는 복지부.건교부.정통부.중기청 등이 발표했다. 1~2월 두달간 총 5건 정도에 불과했던 경기부양 관련 정책이 확 늘어난 것이다.

조사 결과 엇비슷하게 중복된 정책도 많았다.

재경부가 근로자 한명 고용 때 법인세 100만원을 감면해주겠다고 발표하자 산자부는 이공계 실업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한명당 월 60만원을, 노동부는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중소기업이 근로자를 고용할 때 분기별로 한명당 150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부처 간 엇박자도 있다. 재경부는 대기업들이 출자총액규제 때문에 대기업의 투자와 경영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며 규제보다 투자활성화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자와 투자는 다른 개념"이라면서 "정부가 확정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 틀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노동부는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 공공부문의 경우 비정규직 10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재경부는 재원 마련 방안이 없는 비현실적인 정책이라고 했다.

일단 발표부터 먼저 하는 정책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재계와의 조율도 제대로 안한 채로 지난달 '전경련이 참여하는 사모펀드 발족'을 발표했다. 또 재경부는 지난 3월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배드뱅크를 5월 중 출범키로 했다가 이달 중으로 한달 앞당겼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연구조정실장은 "정부가 정책을 남발하다 보니 정책 간 혼선도 빚어지는 것이며, 재정 부담 등으로 효과보다 후유증이 우려되는 것도 많다"면서 "정책의 수에 집착하지 말고, 한 가지를 해도 제대로 해야 기업이나 시장에서도 올바로 알아들어 소기의 정책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욱.김종윤 기자

[뉴스분석] "여태 뭐하다 갑자기 쏟아 내나"

정부가 각종 경제정책을 쏟아놓다 보니 재계에선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서로 엇갈리거나 중복되는 정책이 많아 오히려 헷갈린다"면서 "정부가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의견도 있다. 정부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차원에서다. 내수.투자 부진이 심각하고, 청년 실업 증가가 사회 불안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전경련 이승철 상무도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도 "근본적인 처방이라기보다 곁가지 대책이 많아 자칫 경기는 살리지 못하면서 재정적자 등 심각한 후유증만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정부가 총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뭐하고 있었나 싶게 정부가 선거 전에 경기 부양책들을 무더기로 내놓으니 각각의 정책이 타당성이 있다 하더라도 '총선용'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어긋난 신호는 혼선만 준다=재계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재계가 추진하는 기업도시 건설에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혀 상당히 고무됐었다. 하지만 그 뒤 경제 부처 일각에서 '수도권엔 안 된다'거나 '특정 산업은 곤란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전경련 현명관 부회장은 "정부가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뒷다리를 잡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실효성 없고 부작용 우려돼=정부가 2008년까지 2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목표를 세우자 각 부처들이 앞다퉈 일자리 창출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중복되거나 재탕.삼탕이 많고, 실효성이 없는 정책들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대증요법이자 생색내기"라면서 "법인세 100만원 공제라는 수준의 정책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각 부처가 발표한 일자리 수를 합치면 재경부 30만개, 산자부 11만개 등 모두 180만개가 된다. 2월 말 현재 실업자수 90만명의 두배나 되는 수치다.

?선택과 집중을 하라=지난달 23일 발표된 특별소비세 인하 정책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수희 기업연구센터 소장은 "당연한 결과"라면서 "특소세 폐지 등 과감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창업.분사나 공공기관 채용을 늘려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정부 정책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상무는 "일자리 창출은 원래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면서 "굳이 하겠다면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대기업의 투자를 살리는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업할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노사 관계가 불안하고 총선 후의 정국 구도에 따라 경제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등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에선 '백약이 무효'라는 얘기다.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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