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발끝 마법사’지단 없으니 …‘아트 사커’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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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던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눈부신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프랑스 ‘아트 사커’가 빛을 잃었다.

프랑스는 18일(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 레치그룬트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유로2008 C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0-2로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1무2패, 최하위로 ‘죽음의 C조’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전반 25분 터진 안드레아 피를로의 페널티킥과 후반 17분 다니엘레 데로시의 프리킥 추가골로 낙승을 거둔 이탈리아는 1승1무1패로 네덜란드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합류했다. 이탈리아전만 놓고 보면 프랑스는 불운을 탓할 만했다. 전반 10분 만에 공격의 핵 리베리가 태클하던 도중 다쳐 교체 아웃되며 전열이 흐트러졌다. 전반 25분에는 수비수 아비달이 페널티박스에서 결정적 파울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고 레드카드까지 받아 수적 열세 속에서 싸웠다. 그때부터 승부의 추는 급속하게 이탈리아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대회 전체를 조망해 보면 프랑스는 할 말이 없다. 루마니아와의 1차전에서 0-0으로 비기고, 네덜란드에는 1-4로 대패했다. 10년 전인 98프랑스 월드컵에서 팬들을 놀라게 했던 조직적이면서도,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그래서 ‘아트 사커’라는 애칭까지 들었던 프랑스 축구는 사라졌다.

벌써 은퇴한 지 2년이 넘은 지단의 공백을 여전히 메우지 못한 게 프랑스 몰락의 가장 큰 이유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 지단 없는 프랑스를 재건하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티에리 앙리는 여전히 건재하고, 리베리·벤제마 등 재능 있는 특급 공격수가 줄줄이 뒤를 잇고 있지만 제 빛깔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단처럼 예리하게 패스를 찔러주는 중원의 마술사가 없기 때문이다. 골키퍼 쿠페, 리베리 등 많은 선수가 여전히 지단이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용병술과 선수 장악 능력도 문제다. 도메네크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주장 지네딘 지단과 심각한 불화를 빚으며 팀을 운영했다. 이번 유로2008에서 도메네크 감독은 다양한 공격수를 동시에 활용하기 위해 측면 미드필더에 리베리, 고부, 아넬카 등을 기용하고 투톱에 앙리와 벤제마를 투입했지만 상대 수비를 무너뜨릴 만한 승부수를 찾지 못했다.

네덜란드는 휜텔라르와 판페르시가 골을 터뜨리며 루마니아를 2-0으로 눌렀다.

취리히=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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