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근 북한동향 뭘 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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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최악의 경제난과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이 휴전선 부근에 군병력을 전진배치시킨채 대남 비방을 연일 계속하고 있어 우리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북한은 또 느닷없이 지난 5월 납치한 86우성호 선 원들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다.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앞으로 북한이 한국배제전략으로 대남 강경노선을 그대로 지속할 것인가,아니면 대남공존노선 전환으로 체제유지 전략을 변경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논조나 전문가들의 분석은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하면서 미국을 대치한 주적(主敵)으로서 한국배제전략은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한국배제전략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으며,그렇기 때문에 주적을 구체적인 「한국」에서 막연한 「제국주의」로 돌릴 가능성이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한국배제전략은 북한이 당면한 난국을 타개하지 못했으며,지속적인 한국배제 전략은 북한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라는우려를 갖기에 충분하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과 경수로 공급협상에서 한국을 제외시키기 위해 온갖 「벼랑끝 외교」를 동원했으나 그것은 오히려 견고한 한.미.일공조를 가능케 했고 한국을 따돌린 국제사회에 대한 수해피해지원 호소도 그 결과는 북한을 실망시켰다.쌀 을 싣고간 한국배에 인공기를 게양케 하고 선원까지 간첩혐의를 씌워 감금하는 북한의 태도는 국제사회에서 호혜원칙을 무시한 무뢰한으로 치부돼 북한의 수해지원 호소를 외면케 했고 그나마 남아있던 한국내 북한동정 세력들의 기를 꺾는 결과가 됐다.
지금 북한은 최악의 식량난을 맞아 내년 3월께부터 외부의 지원이 없는한 식량이 바닥나 식량배급을 통치수단화하던 방법도 쓸수 없게 됐다.굶주린 주민들은 이성을 잃고 폭도화돼 군량미를 탈취하고 기아를 이겨내지 못한 북한주민들이 대거 중국 등으로 탈출할 가능성도 있다.에너지난에 겹쳐 군수공장을 제외하고 많은공장들이 문을 닫게 됐다.
김일성(金日成)사망후 1년반이 지났는데도 김정일(金正日)이 정식 권력승계를 못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정치적 불안을 반증하는 것이다.문제는 김정일의 통치능력 부족에 있다.이유야 어떻든김정일은 당총서기와 국가주석은 고사하고 김일성이 넘겨준 북한군최고사령관직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최근 북한군부가 권력장악을 강화하면서 경찰기능까지 떠맡고 있다는 보도는 김정일 정권이 식량폭동 또는 민간소요를 우려해 이에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정일이 당과 정부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군부중심으로 민간치안까지 해나가기로 했다면 그것은 그가 당총비서나 국가주석직 승계를 상당히 지연시키지 않을 심산에서다.휴전선 일대에 군사력을 증강배치시키고 있는 것도 남한내 위기적 상황조성 목적도 있겠지만 국제적 고립,경제위기와 대내정치 불안 등으로 체제유지가 다급해진 상황을 풀기 위한 수세적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우성호 선원을 송환한 것은 매우 중요한의미가 있다.단기적으로 북한이 식량난 해결을 위한 한국의 협조를 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장기적 측면에서 볼 때 북한 대남전략의 점진적 수정신호로 볼 수 있다.제국주의자들 의 도발을 내세워 한반도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한국을 소외시키는 전략을 수정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을 통제할 수 있는 구실을 가질 수있고 전쟁방지를 위해 남한과 교류.접촉한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 당국을 상대하기보다 민간차원에서 제한적인 대화와 교류로 개방을 최소화시키면서 미.일과의 관계개선에역점을 두려할 것은 분명하다.북한이 추구하는 장기 목적은 미.
일과의 관계개선으로 당면문제를 풀고 한국과 교류.접 촉을 통한공존유지로 체제안전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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