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복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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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람들은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해 보험에 든다.주된 이유는 위험부담을 지기 싫어하기 때문이다.이와 반대로 복권을 사는 사람은 비록 작긴 하지만 스스로 위험부담을 진다.부담이 있는 대신 횡재(橫財)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복권은 「감춰진 세금」이다.정부.공공단체가 어떤 사업을 벌이고자 할 때 재원 마련이 어려우면 흔히 들고 나오는 것이 바로복권이다.복권을 사는 사람은 주로 가난한 사람이다.따라서 정부가 복권으로 재원을 마련할 경우 부담은 주로 가 난한 국민이 지는 셈이다.
복권의 영어명칭인 「로터리」는 이탈리아어 「로토」에서 왔다.
현재의 복권은 1530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로토에서 출발했다.로토는 그후 전유럽으로 퍼져나갔다.1566년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항구 복구사업을 위해,그후 제임스 1세는 신대륙 식민지 건설을 위해 복권을 발행했다.미국은 1776년 대륙회의가 독립전쟁자금 마련을 위해 복권을 발행했다.유명한 하버드.예일대학 설립에도 복권이 동원됐다.
복권 남발(濫發)은 곧 사회문제가 됐다.바로 복권이 갖는 도박성 때문이다.영국은 1826년 복권발행을 전면 금지했다.미국도 1895년 복권을 「사기와 타락」으로 규정,몇개 주(州)를제외하곤 금지됐다.미국은 지난 63년 복권이 부 활됐으나 일부주는 아직도 금하고 있다.영국은 지난해 11월 168년만에 복권이 부활,큰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는 지난 69년 서민주택 건설자금 조성을 위해 시작된주택복권이 본격적인 복권사업의 출발이다.그후 26년이 지난 지금 복권종류만 일곱가지나 되고,발행규모도 6,530억원(95년)에 달한다.또 91년 이후 연평균 신장률이 3 2%나 된다.
머지않아 「복권왕국」이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이같은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운영은 구태의연(舊態依然)하다.관계법조차 없이 총리실 훈령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특히 지방자치 실시 이후 국가복권발행단체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이권(利權)싸움이 치열하며,무질서한 복권발행으로 국민 의 사행심(射倖心)만 부추기고 있다.그렇지 않아도 얄팍한 주머니를 복권에털리는 서민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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