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다 아는 비밀 왜 공표 막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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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거법 108조에 따라 2일부터 총선 투표일인 15일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수 없다. 선거법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 여론조사 보도를 왜 금지했을까.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을 못 믿기 때문이다. 조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더라도 공표된 조사결과에 따라 유권자의 투표성향이 오락가락한다는 판단이 금지규정에 깔려 있다. 앞서가는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나, 뒤처진 후보에 대한 '동정표 효과'를 염두에 둔 판단일 것이다. 통제가 어려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을 통해 여론조사와 관련한 허위 사실이 유포될 위험성도 이런 조치의 배경이다.

그러나 밴드왜건 효과와 동정표 효과 때문에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우세자 쪽에 가담하거나 열세자 쪽을 동정하는 효과는 서로 상쇄돼 결과적으로 공표로 인한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실효성 측면에서도 공표금지 조치는 효과가 없다. 뉴미디어 발달로 여론조사 정보의 유통을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 막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국 언론이나 인터넷 통신을 통한 여론조사 공표는 법으로 막을 수 없다. 1997년 프랑스 의회선거 때다. 당시 1주일 전부터 조사결과 보도를 금지했는데, 한 신문이 2~3일 전에 보도해 문제가 발생했다. 그 신문에선 "여론조사 결과가 인터넷에 널려 있다.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을 언론만 보도하지 말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선거 경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여론조사는 허용돼야 한다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지금 상태라면 투표일까지 판세정보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온갖 소문과 추측이 난무할 것이다. 음모와 작전이 끼어들 여지도 없지 않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선거 투표일 이틀 전까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당장 폐지하기 어렵다면 금지기간을 지금의 선거운동기간 13일에서 7일 정도로 줄이는 점진적 개선책을 도모해야 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98년 캐나다 대법원은 여론조사 보도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론조사 보도금지는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정보 보고자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이 정부에 의해 억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창운 여론조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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