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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세습, 국가책임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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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빈부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중산층보다 절대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중산층이 훨씬 많다. 실업난.카드빚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이혼.별거.사별 등에 의한 가정해체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 아동 10명 중 1명꼴 극빈층

가난에 갇혀 있는 아이들 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 아이와 실질소득이 최저생계비를 살짝 넘지만 여전히 가난한 차상위계층가구 아이, 그리고 실직과 가정해체로 양육을 포기한 기아나 미혼모 아이 등 요보호아동까지 합하면 대략 100만명 정도가 된다. 이는 전체 아동 1157만명의 8.6%로서 10명 가운데 1명 가까이 되는 수치이며, 문제는 이 수치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는데도 가난한 아이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국가발전 동력에 지장을 줌은 확실하다.

가난에 익숙할수록 아이들은 꿈을 쉽게 잃어 간다. 태어나서 계속 가난의 수렁에 빠져든 아이들은 질병에 노출되기 쉽고, 사교육의 기회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좀처럼 가난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고통스러워도 함께 이겨나갈 수 있었지만 풍요 속에 느끼는 박탈감은 자포자기하기 십상이다.

가난하지 않은 아이에게 과잉보호가 문제라면, 가난한 아이에게는 과잉방임이 문제다. 가정.학교.사회가 어릴 적부터 가난한 아이들을 방치하면서도 가출이나 탈선.비행의 결과에 대해서는 지독하게 엄격하다. 희생자 비난(blaming the victims)의 관례를 국가정책에 반영해 가난한 자에 대해 사회적 배제를 가하며, 사회.경제적 차별을 당연시한다. 복지정책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간주하며, 빈곤의 대물림과 고착화 현상을 개인이나 가족의 게으름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난한 아이들을 방치하면 나중에 더 많은 복지예산으로 감당해야 할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빈곤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실마리를 가난한 아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서 찾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가난의 굴레에서 미리 끄집어내 빈곤 세습을 차단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물로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국가의 책임이 크다. 내실 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립, 일자리 창출 등 근본적인 빈곤탈출 정책의 실천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빈곤이 세습되지 않도록 가난한 아이들에게 양육비 제공과 함께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자립능력을 고취하는 일이다. 아울러 방임된 가난한 아이들의 분노와 좌절을 도닥거려 삶의 의지를 키워주는 복지서비스정책을 수립하고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의 책임과 함께 일반사회의 지원체계 확립도 필요하다. 가난한 아이들과 중상류층 가정의 결연사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형편이 나은 이웃이 어려운 이웃 아이들을 일정 기간 돌봄으로써 새싹으로 키워 나갈 수 있다.

*** 학교사회복지제 활성화를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외국의 많은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교사회복지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학교사회복지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가정과 지역사회를 연계함으로써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교육복지를 담당하며, 학생복지 차원에서 학교폭력 등 학교부적응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아이들 문제에 대해 관심을 쏟는 일이다. 선거철에만 잠깐 관심을 보이는 정치권의 모습이 아니라, 가난 때문에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고 불안한 상태로 보낼 수밖에 없는 매시간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이들에게 다가가 가르쳐 줘야 한다.

이제는 가난에 갇힌 아이들을 풀어주는 그러한 촛불들을 전국 곳곳에 밝혀야 한다.

조흥식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