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플라멩코는 세상과 소통하는 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소리를 잃은 소년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몰랐다. 그는 외로웠고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람들이 쉽게 놓치는 무언가에 민감하게 반응함을 느꼈다. 그건 미묘한 ‘떨림’이었다. 그 떨림이 그를 훗날 세계적인 플라멩코 안무가로 성장시킬 단초가 되리라고는 본인도, 어머니도 몰랐다. 호아킨 마르셀로(43·사진). 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그가 안무한 작품이 한국을 찾는다. 17∼22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카르멘 모타의 푸에고’다. 카르멘 모타는 마르셀로의 어머니이자 ‘스페인 플라멩코의 대모’다. 모자의 합작품인 셈이다.

마르셀로는 여덟 살 때 소리를 잃었다. 고열을 동반한 바이러스성 수막염 때문이었다. 세상과 자칫 단절이 될 뻔한 순간, 다행히도 그는 타인의 입 모양을 알아챘고, 자신의 의사도 더듬거림과 수화로 나름 전할 수 있었다. 그는 눈에 띠는 소년이 아니었다. 대신 학업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대학에선 심리학을 전공했다. 플라멩코와 인연을 맺을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단 어릴 적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연습을 구경가고, 공연을 보는 건 흔한 일상이었다.

스물한 살 때였다. “마법처럼 다가왔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그의 e-메일 대답처럼 마르셀로는 플라멩코에 갑작스레 빠져들었다. 쉽게 멈출 수 없었지만 멜로디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건 사실 치명적이었다.

대신 그는 작은 진동에도 예민했다. 특히 플라멩코는 발구름·손벽 등으로 춤 동작의 기본이 형성됐다. 게다가 그는 어릴 때부터 절권도를 익혀 사범 자격을 따낸 정도로 동작에 절도가 있었다. 깊은 호흡, 절제된 춤사위, 놀라운 집중력, 고감도 리듬감 등 그는 소리 대신 수많은 무기로 자신 만의 스타일을 구축해갔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고스란히 나타난다. 강렬한 색상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빠르게 무대를 휘저으며 화려한 세트·조명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또한 동작 하나하나를 지시하기 보다 내면의 울림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마르셀로의 안무법은 정적 속에서 더욱 빛을 낸다. 마르셀로는 “단원과 나는 쉽게 의사 소통을 못 했지만, 그래서 더욱 서로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파악할 수 있었다. 소리 없는 의사 소통이 내 플라멩코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Life&Style 섹션 '레인보우' 홈 가기 joins.com/rainbow
Life Me J-Style Art week& Book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