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의 ㅋㅋㅋ <3> ‘파워풀’ 판바스턴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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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판바스턴 감독이 14일(한국시간) 유로 2008 예선 2차전에서 프랑스를 4-1로 대파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베른(스위스) AP=연합뉴스]

13일(한국시간) 열린 유로 2008 독일-크로아티아전. 독일의 왼쪽 사이드가 뚫리면서 크로아티아에 골을 먹자 휴대전화가 띠리릭~~~~! 울렸다.

“왼쪽, 쟤 뭐야?” “왼쪽이 구멍이라니까요!”

아버지(차범근 수원 감독)가 선수들과 강릉에서 합숙 중이라 우린 중계 도중에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는다.

네덜란드의 예선 둘째 경기가 열린 14일 아침 아버지한테 다시 문자가 왔다.

“아들, 어제 축구 봤니? 98 때(1998년 프랑스 월드컵) 생각나더라…. 네덜란드가 참 좋더라.” ㄲㄲㄲㄲㄲ…. 이날 프랑스 감독의 심정이 당시 아버지의 심정이었을 거다.

네덜란드가 완전 무서운 기세로 출발하고 있다. 지난 2경기에서 마치 지역 예선을 치르듯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가볍게 이겨 버렸다. 네덜란드는 정말로 신기한 팀이다. 항상 좋은 선수로 넘쳐난다.

선수들 이름으로만 봤을 때 네덜란드는 월드컵을 2~3차례 우승했어야 맞다. 그러나 번번이 중요한 고비에서 넘어진다. 70년대 월드컵에서는 크루이프가 이끌던 팀이 결승에서 두 번이나 패배를 맛봐야 했다.

그 이후에도 베르흐캄프, 클라이버르트, 오베르마르스, 판니스텔로이…. 너무나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네덜란드는 큰 대회에서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몇 년 전 네덜란드의 평가전을 보는데 카메라가 경기 도중 벤치를 잠깐 비췄다. 헉…! 소리가 절로 났다.

마카이, 판호이동크, 세이도르프, 클라이버르트, 판보멀…. 별들이 모인 은하수 같았다. 네덜란드는 스네이더르, 판데르파르트, 판페르시 같은 젊은 선수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세대교체에 성공했다.

이번 유로 2008 초반 가장 눈에 띄는 팀으로 떠올랐다. 선수들만이 아니다. 네덜란드는 좋은 감독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아버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신 리누스 미셸 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거스 히딩크! 그러나 이번에 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은 이들과 다르다.

판바스턴.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다. 나에게 그는 전설적인 스트라이커다. 또 리누스 할아버지와 함께 유로 88 우승을 일군 주역이다. 그림 같은 발리슛으로! 준결승에서는 베켄바워가 이끌던 홈팀 독일을 판바스턴의 낮은 땅볼로 재워 버렸다. 이들 두 나라는 만나면 으르렁거리는, 아주 사이 나쁜 이웃이다.

일곱 살이 채 안 됐던, 열렬한 꼬마 축구팬이던 나도 그때 독일의 패배가 속상해 친구들과 함께 엉엉 울었다. 그 후 유로 2000이 네덜란드에서 열렸고, 네덜란드는 은하수팀답게 화려한 경기를 펼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준결승에서 2명이나 퇴장당한 이탈리아를 넘지 못하고 은하수의 행진은 끝이 났다.

네덜란드. 분명 화려하고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나라다. 그러나 우직한 힘이 없는 네덜란드는 중요한 고비를 비비적거리고 넘어가질 못한다. 나는 판바스턴 감독이 화려하게 예선을 통과하고도 건지는 게 없는 그런 감독으로 남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가 부상으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을 때 어린 내가 신문을 뒤적이며 느꼈던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을 이번 대회에서는 느끼고 싶지 않다. 판바스턴 파이팅!

차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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