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盧씨 재판의 '역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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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연말이 어째 예전같지 않다.연말의 번잡스러움을 내켜하지 않았으면서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그 번잡함에 길들여져서이지 싶다.연말 대목을 노리고 휘황찬란한 치장을 한 백화점이나,통행이 번잡한 길목에 좌판을 벌인 노점상이나 올 경기가 예전의절반만도 못한 것같다고 푸념들이다.있는 사람들의 돈 굴리기 경연장인 주식시장도,없는 사람들이 횡재수를 노리는 복권판매대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그동안 저마다 지녀왔던 목표랄까,꿈들이 어쩐지 허망하게 여겨지는 그런 느낌들 이 세태(世態)곳곳에 묻어있다. 어제 아침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섰다.3년이 채 지나지않은 시기,온 나라의 관공서에 모두를 굽어보듯 자리했던 그 얼굴이 흰색 수의(囚衣)차림으로 고개를 숙인 채 왕년의 고관대작,이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벌총수들과 함께 피고 인석에 자리잡았다.
이런 장면을 봐야 하는 심회가 간단했을 수는 없다.「어쩌다가」의 시각도 있을테고,「이제서야」라는 감회도 있었을 게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심회야 어찌됐든 이번 일이 갖는 「역사적」의미를 분명히 파악하는 것이다.
죄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며 지위의 고하(高下)나 재력의정도가 처벌여부를 좌우하는 잣대가 될 수 없음은 법치국가의 진리다.그럼에도 그 진리가 온갖 허구(虛構)와 수사(修辭)속에 방기(放棄)돼왔음을 우리는 안다.이제 그 진리를 제대로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데 이번 사건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동안 우리의 정치행태와 기업운영방식이 얼마나 전근대적이었던가를 깨우치고,이런 전근대적 상황을 차제에 타파함으로써 우리가살고 있는 이 나라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점 또한 실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을 정국불안이나 경제악화같은 부차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려 해선 안된다.사태의 본질은 항상 그러한 부차적 관점에 의해 가려지고 왜곡돼 왔다.오히려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예외에 가위눌려온 진리 를 되살리고정치.경제.사회의 비근대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찾는 길이라고 나는 본다.
이렇게 거듭나기 위한 바른 길은 2,500년전 공자의 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제경공(齊景公)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단 여덟자로 대답했다.『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하고,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계강자(季康子)도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공자가 대답하길 『정치라는 것은 바로잡는 것입니다.공께서바름으로써 이끈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습니까(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공자의 이같은 말은 후대의 전제군주들이 의도적으로 편협하게 해석했듯 왕권(王權)의 절대성-또는 같은 맥락에서 가부장적(家父長的)권위의 절대성-을 옹호하는 의미가 아니다.각자가 맡았거나 맡겨진 자리에서 명분에 맞는 행동을 하라는 시 공(時空)을 초월한 메시지다.자리의 경중(輕重)은 있을지언정 정명(正名)의 책무는 누구에게든 적용된다.
이 메시지 앞에서는 모두가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올바름」으로 이끌어야 할 정치를 이권놀음의 장(場)으로 만들어버린 정치는 말할 나위도 없고 기업이든,언론이든 누가 떳떳하게 소임을 다해 왔노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온갖 사고와 정치적 격랑으로 점철됐던 올 한해를 보내면서 소임을 다하지 못해 얻은 부끄러움은 이제라도 그 소임을 다함으로써,구각(舊殼)을 깨는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벗어날 것을 다짐하자.
(국제경제팀장) 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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