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아이 스스로 이야기를 창조하게 하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색도화지 한 장과 가위·풀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수 있는 놀이가 있다면? 찢고 오리고 붙이는 가운데 시나브로 창의력도 쑥쑥 클 수 있다면 효과 만점의 ‘에듀테인먼트’가 될 터다. 16일부터 매주 월∼금 오전 8시30분 EBS에서 방영될 애니메이션 ‘빠삐에 친구’는 그런 면에서 눈길을 쏙 잡아 끈다. 아바(기린)·리코(토끼)·테오(곰) 세 동물 캐릭터가 신기한 세상을 경험하고 친구들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여느 애니메이션과 달리, 에피소드마다 ‘종이놀이 시간’이 따라붙는다. 갖가지 종이를 가지고 배경과 캐릭터 만드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아이는 시청 후 스스로 종이를 찢고 오리고 붙이면서 놀 수 있다.‘빠삐에 친구’는 애니메이션 ‘망치’로 알려진 캐릭터플랜(공동대표 양지혜·이동기)과 프랑스 문스쿱그룹의 프랑스애니메이션이 공동제작했다. 국내 방송사상 처음으로 한국과 프랑스(공영방송 채널 F5)에서 동시 방영된다. ‘종이를 찢어 만드는 동물 캐릭터’라는 아이디어는 프랑스 동화작가 밀라 보탕의 것. 보탕은 원작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애니메이션 기획 과정에도 참여해 아바·리코·테오 세 동물의 탄생을 도왔다.

파리 노트르담 근처의 자택에서 보탕을 만났다. 예순이 넘은 할머니 작가는 사진촬영을 의식한 듯 핑크빛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는 동화책 외에도 미술교육에 관심이 많아 『더 빅 북 오브 컬러즈(The Big Book of Colors)』 『드로 위드 밀라(Draw with Mila)』 등 다수의 교육서를 냈다. “책 만드는 장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종이를 가지고 노는 것에 친숙했다”는 그는 30여 년 전인 1970년대에 이미 TV에서 종이를 이용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빠삐에 친구’를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아이들로 하여금 ‘아, 정말 쉽구나!’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었어요. 매끈하게 잘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지레 ‘난 이렇게 못 그릴 거야’라고 겁을 먹지요. 하지만 종이를 마음대로 찢고 오려 모양을 만드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필요한 건 오로지 호기심뿐이지요.”

‘에듀테인먼트’로서 종이 찢기의 장점이 궁금했다. 보탕은 즉석에서 색도화지를 죽죽 찢어 토끼 모양을 만들었다. “질감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이냐, 즉 어떤 종이를 고르느냐부터 아이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하마라면 표면이 매끄러운 종이를, 토끼라면 거친 종이를 택해야겠지요. 다리 등 신체 부분을 찢거나 잘라 붙일 때는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도 신경 써야 해요. 그러니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과 관찰력도 길러질 수 있지요. 잘 찢는 것보다 생각을 하면서 찢는 게 중요합니다.”

‘빠삐에 친구’의 주인공이 토끼·기린·곰이 된 이유도 이런 의도 때문이다. 질감 표현과 몸의 움직임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동물을 고른 것이다. “곰은 털이 많고, 토끼는 움직임이 잽싸지요. 귀도 길고요. 기린은 매끄러운 피부를 지녔고, 목과 몸을 통해 수평과 수직 개념을 이해할 수 있어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그는 “종이를 찢고 오리면서 아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게 하라”고 조언했다. “토끼가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엄마가 없어서 찾으러 나간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붙이다 보면 자연히 상상력도 풍부해져요.”

부모의 역할은 없을까. “아이가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박수치고 격려해주면 됩니다. 종이 찢기는 요리와 비슷해요. 조미료 뿌리고 냄새 맡고 맛 보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 부족한지, 넘치는지를 느끼는 것이지요. 아이가 잘 느낄 수 있도록 어깨를 두드려 주세요.” 

파리=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