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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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광장공원을 산책하고 호텔에 돌아온 것은 10시 지나서였다.
하늘은 초저녁처럼 환했고 거리도 초저녁처럼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밤새 이렇게 환하면 생활의 사이클이 달라지겠어요.』실은 아리영 자신의 사이클이 달라지고 있었다.
아까 그 레스토랑서 「스콜」한 다음 아리영은 시계 바늘을 여덟시간 뒤로 물렸다.늘 해외로 오가며 시차(時差)에 맞춰 시계바늘을 돌리면서도 무심하기만 했는데 이번만은 각별한 것을 느꼈다.이렇게 한 20년쯤 뒤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절실했다.
-아니다.
아리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이미 마음의 시계 바늘을 돌렸다.나는 지금 20년 옛날 결혼하기 전의 아리영이다.
호텔에 돌아오자 우변호사는 자기 방으로 아리영을 데리고 갔다. 그의 방엔 얼음에 채운 샴페인과 치즈.잔새우찜.연어알을 수북이 얹은 보리빵조각 등 술안주가 놓인 작은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야식용입니다.』 입가로 웃으며 우변호사는 아리영을 안고 다시 진한 키스를 했다.입을 맞출 때마다 동해안에서의 첫키스 생각이 나며 다리 사이가 젖었다.
『샤워하겠어요?』 우변호사 말에 아리영은 고개만 끄덕였다.깜장과 연분홍 대리석으로 세련되게 꾸며진 욕실이 멋스러웠으나 그런 것을 눈여겨 볼 마음의 겨를이 없었다.
아리영이 욕실에서 나오자 우변호사는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유리잔에 따라 권하고 자기도 샤워를 했다.
이번엔 아리영이 레모네이드를 따라 샤워하고 나온 우변호사에게권했다.그가 손을 저었다.
『저는 마시는 법이 달라요.아리영씨가 먼저 머금어서 제 입에넣어 주셔야 됩니다.』 떼쓰듯 했다.레모네이드는 아리영 입에서우변호사 입으로 전해졌다.꿀꺽 소리내어 삼키며 그는 아리영을 안아 침대에 뉘었다.호텔 가운 앞자락이 펼쳐져 아리영의 두 다리가 드러났다.
우변호사는 자신의 가운을 벗어 던지고 아리영의 가운을 마저 벗겼다.하얀 반투명의 살결이 눈부셨다.
숨이 거칠었다.그러나 우변호사는 천천히 의식(儀式)을 치러나갔다.귓불과 젖가슴에 이어 발끝에 입을 맞췄다.그리고 두다리 안쪽을 위로 훑으며 늪가를 맴돌았다.때로는 부드럽게,또 때로는강하게….그것은 현기증나도록 화려한 축제의식이었 다.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
아리영은 신음을 토하며 그의 「몸」을 찾았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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