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꺼버리고 싶은 ‘허무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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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허정무 축구는 ‘허무 축구’다.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8일 새벽(한국시간) 축구 대표팀이 적지에서 요르단을 꺾는 순간, 인터넷에는 승리의 축하 대신 허 감독을 질타하는 글이 쏟아졌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4차전에서 졸전 끝에 박주영(서울)의 페널티킥 결승골로 요르단에 1-0으로 승리했다. 허 감독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승점 3점이었다”며 경기 내용보다 결과에 의미를 부여했다.

2승2무(승점 8)가 된 한국은 14일 투르크메니스탄을 이기면 북한과의 6차전 결과에 상관없이 최종예선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서울에서 열린 요르단전의 충격적인 무승부에 이은 잇따른 졸전에 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최종 예선에 올라가도 문제다. 사령탑이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게 팬들의 목소리다.

현장에서 드러난 허 감독 용병술의 문제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경기 조절 능력 부재다. 언제나 힘겹기만 한 중동 원정에서 애초부터 화끈한 승리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기를 지배하지 못한 아쉬움은 컸다. 홈그라운드 이점을 안고 거세게 달려들 요르단을 상대하려면 경기 템포를 조절해야 했다. 미드필드에서 볼 점유율을 높여 경기를 장악하는 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경기 내내 미드필드 싸움에서 열세를 드러내며 상대에 휘둘렸다. 이날 경기는 점유율 싸움에서 완전한 패배였다. 상대의 가장 위협적인 선수를 무방비로 놓아둔 허술한 수비도 문제였다. 한국은 지난달 31일 요르단전에서 하산 마무드에게 2골을 내줬다. 당시 교체 출장했던 마무드는 이날 선발로 뛰었다. 하지만 한국은 그토록 당하고도 상대의 키 플레이어를 봉쇄하는 데 또 실패했다. 전반 10분 코너킥 상황에서 노마크 헤딩슛을 내준 뒤 전반 38분에도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다. 프리킥 상황에서 마무드는 아무런 견제 없이 헤딩슛을 했고, 공은 골대를 맞고 퉁겨나왔다.

유럽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도 여전했다. 오랜 기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컨디션과 경기 감각이 크게 떨어진 이영표(토트넘)를 또다시 선발로 냈고, 설기현(풀럼)도 마찬가지였다. 두 선수는 최악의 플레이를 한 끝에 교체 아웃됐다. 키 플레이어 역할을 맡긴 박지성(맨유)도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허 감독은 “짧은 훈련 기간 속에 과정과 결과를 모두 가지기란 쉽지 않다. 차차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훈련 시간은 어느 팀이나 대동소이하다. 월드컵 예선 자체가 훈련이자 실전이다. “울화통이 치밀어 중계 TV를 끄고 싶었다”는 격앙된 축구팬들의 분노에 뭐라고 허 감독이 답할지 궁금하다.

한편 북한은 투르크메니스탄을 평양에 불러들여 1-0으로 이겼다. 한국과 동률(2승2무)로 골득실차 2위를 달리고 있는 북한도 14일 요르단전을 이기면 최종예선행을 확정한다.

정영재 기자, 암만=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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